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민경훈의 논단] 간교하고 지혜로운 뱀의 두 얼굴

지역뉴스 | | 2024-12-31 17:00:43

민경훈의 논단, LA미주본사 논설위원,간교하고 지혜로운 뱀의 두 얼굴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포유류 가운데 시력이 가장 좋은 동물은 무엇일까. 정답은 인간이다. 인간은 20/20 비전이 있고 공간 지각력이 뛰어날뿐 아니라 100만개의 색소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능력을 인간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생활한 덕으로 보고 있다. 나무 위에서는 나뭇가지의 위치를 정확이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칫 잘못하면 나무에서 떨어져 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도 나무에서 사는 원숭이의 가장 큰 천적은 뱀이다. 소리 없이 뒤에서 다가와 발 뒤꿈치를 무는 뱀이야말로 이들의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성경이 창세기에서 뱀에게 인간의 발 뒤꿈치를 무는 저주를 내린 것도 이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원숭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뱀이라고 한다. 지금도 원숭이 출몰 지역에서 이들을 쫓는 방법으로 즐겨 쓰는 것이 뱀 모형을 만들어 뿌려 놓는 것이다. 단 같은 모형을 한자리에 오래 놔 두면 가짜인 것을 영리한 원숭이들이 알기 때문에 수시로 자리를 옮겨놓아야 한다.

성경은 또 뱀을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키고 낙원에서 추방돼 죽음을 맞게 한 “가장 간교한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간교하다”는 구약의 원어인 히브리어 ‘아룸’의 번역인데 이 단어에는 이밖에도 “지혜롭다”는 뜻이 들어 있다. 신약 마태복음 신약 10장 16절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나오는데 여기서 “지혜롭고”는 신약의 원어인 그리스어 ‘프로니모이’의 번역으로 이 또한 “현명하다” 외에 “약삭빠르다”는 뜻도 있다.

따지고 보면 “간교하다”와 “지혜롭다”는 한끗 차이로 모두 “어리석다”의 반대말이다. 좋은 머리로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할 때는 “간교하다”고 하고 이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쓸 때 “지혜롭다”고 말할 뿐이다. 뱀이 이처럼 양면적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두쪽으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혀가 누구라도 홀딱 넘어가게 만드는 달변가를 연상시켰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뱀의 두 얼굴은 이뿐이 아니다. 뱀을 악의 상징으로 보는 구약에서조차 때로는 치유와 생명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모세5경의 하나인 ‘민수기’ 21장 4절에는 이스라엘인들이 야훼와 모세를 원망하자 야훼가 불뱀을 보내 이들을 물어죽이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모세가 야훼에게 간구하자 청동으로 뱀을 만들게 하고 뱀에 물린 사람이 이를 보자 상처가 나아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뱀과 치유, 생명과의 관계는 그리스 신화에서 더욱 뚜렷하다. 여기서 치유의 신은 아스클레피우스인데 그의 상징이 뱀이 감겨 있는 막대기다. 이와 종종 혼동되는 ‘카두세우스’는 뱀 두마리가 엉켜있는 막대기로 헤르메스의 상징이며 지금도 약국 표시판으로 널리 사용된다. 이 모양은 기원전 4천년 숭배되던 수메르의 신 닝기스지다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또한 의약의 신과 연관돼 있다.

이처럼 뱀이 치유와 생명의 상징이 된 것은 그가 주기적으로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대인들에게 이런 뱀의 모습은 영생불사의 상징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중국 신화에서도 뱀의 이미지는 부정과 긍정이 섞여 있다. 중국 문명의 시조인 삼황오제 중 첫번째로 인간에게 불 사용법을 가르친 복희씨와 그와 남매 사이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여와 모두 뱀의 몸을 하고 있다. 이 둘이 서로 꼬리를 감고 있는 모습은 ‘카두세우스’와 흡사하다.

중국 고전에는 ‘주역’에서 ‘영웅호걸도 뱀처럼 땅속에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거나 ‘주례’에서 ‘거북은 지혜롭고 뱀은 과감하다’는 등 뱀의 덕을 칭송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뱀의 이중적 성격은 한국의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정주는 첫번째 시집 ‘화사집’의  ‘화사’에서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면서도 “꽃대님보다 아름다운 빛”이라고 썼고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에서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라고 적었다.

새해는 ‘뱀의 해’고 그것도 을사사화와 을사늑약 등 흉한 일이 일어난 을사년이다. 연산군이래 최대 옥사의 하나인 을사사화는 명종 때 대윤과 소윤으로 대립으로 100여명이 죽거나 유배된 사건으로 이때부터 외척의 발호가 시작되었다. 을사늑약은 조선의 후신인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기고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한 조약으로 그 체결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수치스런 사건의 하나이다. 이때부터 대한제국은 사실상 소멸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뱀의 양면성처럼 을사년이 어떤 해가 될 것인지는 해의 이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새해를 살아가는 각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간교하기보다 지혜롭고, 물고 뜯기보다 치유와 생명의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민경훈 LA미주본사 논설위원>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김하성 행선지 전망…디트로이트·애틀랜타 가능성
김하성 행선지 전망…디트로이트·애틀랜타 가능성

김하성[AFP=연합뉴스]3일 내야수 김혜성(25)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와 계약한 가운데 자유계약선수(FA)로 시장에 나와 있는 내야수 김하성의 행보에

법원 '체포영장 이의신청' 기각…윤대통령측 "재항고 검토"
법원 '체포영장 이의신청' 기각…윤대통령측 "재항고 검토"

"발부 자체는 불복 다툴수 없어 부적법…체포·구금시 적부심사 청구할수 있어""내란죄는 공수처 수사가능 '관련 범죄'…대통령실 관할 서부지법에 영장 가능"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

올해 1분기 주택 구매력 개선 기대 힘들다
올해 1분기 주택 구매력 개선 기대 힘들다

2025년 을사년 새해가 활짝 밝았다. 올해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운 바이어라면 새해 소망이 남다르겠다. 무엇보다 집값이 떨어지고 모기지 이자율도 낮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집 팔 계획 있다면… 다양한 판매 방식 고려해볼만
집 팔 계획 있다면… 다양한 판매 방식 고려해볼만

올해 집을 팔 계획이라면 연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경쟁을 피해 연초부터 주택 구입 활동에 나서는 바이어가 해마다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 말 늘어난 주택 수요가

동계 스포츠 시즌 시작… 연골 손상·인대 파열 주의보
동계 스포츠 시즌 시작… 연골 손상·인대 파열 주의보

이달 들어 전국 스키장이 문을 열면서 동계 스포츠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사진 설원을 내려오는 스릴감에 많은 이들이 찬바람이 불길 기다리지만, 추운 날씨에 빠른 속도를 내는

나이 들어도‘회복 탄력성' 있으면 질병 이길 수 있다
나이 들어도‘회복 탄력성' 있으면 질병 이길 수 있다

90세 어르신이 오랜만에 외래 진료를 위해 방문했다. 휠체어에 앉아 아들 내외와 함께 온 환자분은 최근 낙상으로 고관절이 골절돼 외부 병원에서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은 뒤, 재활병원

식중독은 여름에만? 겨울에 기습하는‘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은 여름에만? 겨울에 기습하는‘노로바이러스’

노로바이러스 식중독 40%가 겨울에 발생 식중독은 음식이 쉽게 상하는 한여름 질병으로 여겨지지만, 겨울도 안심할 수 없다. 한 번쯤 들어봤을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은 겨울에 기승을 부

전기차 세액공제 차종 40→25개…현대차그룹만 유일하게 추가
전기차 세액공제 차종 40→25개…현대차그룹만 유일하게 추가

EPA, 외국우려기업 적용해 보조금 대상 밝혀…폭스바겐·리비안 제외 현대차 2종·기아 2종·제네시스 1종 등 신규 수령대상 올라  기아 EV6 [기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빠르게 변화하는 대학 입시 트렌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대학 입시 트렌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조기 전형 중요성 높아져입학시험 준비도 철저히여전히 중요한 학업 성적대학 학업능력 증명이 관건 대학 입시 경향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학 입학 표준 시험 점수 제

FAFSA 신청시 부모 체류신분 노출 불안 커진다
FAFSA 신청시 부모 체류신분 노출 불안 커진다

부모 소셜번호 없으면 ‘0’ 기입체류신분 노출 요인 될 수 있어트럼프 재집권 앞두고타 정부기관과 정보공유 우려 커져 연방정부의 대학 학자금 보조 신청서(FAFSA) 제출과 관련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