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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의 논단] 신기하고 중요한 박쥐 이야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9-03 12:03:10

민경훈의 논단, LA미주본사 논설위원,박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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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중에서 박쥐만큼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된 케이스도 드물 것이다.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박쥐는 악과 악마의 상징이었고 인간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도 박쥐로 변신한다. 우리 말에도 ‘박쥐 같은 인간’은 짐승도 됐다 새도 됐다 하는 간사한 인간을 가리킨다.

박쥐는 왜 이렇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일까. 우선 생긴 것도 꺼먼데다 얼굴도 흉하게 생겼고 주로 밤에 활동하며 음침한 동굴에 모여 사는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얼굴 생김은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일 뿐이고 동굴에 사는 것이나 밤에 활동하는 것은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박쥐들은 음파를 발사한 후 그것이 돌아오는 것을 탐지해 움직이는 에코로케이션을 사용하기 때문에 포식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낮에 동굴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박쥐의 명성은 2020년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면서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것이 박쥐를 통해 야시장에서 퍼진 것인지 중국 생화학 실험실에서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한지만 박쥐 몸 안에 전 세계를 강타한 SARS-COVID-2 바이러스가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광우병이나 MERS 바이러스도 원래는 박쥐 몸에 있던 것이다.

박쥐가 이렇게 온갖 바이러스의 소굴이 된 것은 그것이 포유류 중 가장 많은 밀집 서식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 샌안토니오 인근의 브래큰 동굴에는 최대 2천만 마리의 박쥐가 함께 살고 있다. 최대한 개체를 더 퍼뜨리려고 하는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박쥐만큼 훌륭한 숙주는 없는 셈이다.

얼핏 보면 인간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박쥐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중요한 순기능이 있다. 박쥐를 매개로 해 열매를 맺는 과일은 300종이 넘으며 이중에는 바나나, 망고, 아보카도, 카카오 등 인기 품종이 포함된다. 박쥐 없이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도 없다. 일부 박쥐는 또 매일 자기 몸무게에 해당하는 양의 곤충을 먹어치운다. 박쥐가 없다면 인류는 더 많은 해충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박쥐의 신체적 특징이다. 박쥐에는 수많은 바이러스가 기생해 살고 있지만 이로 인해 죽는 일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박쥐는 체구에 비해 매우 오래 산다. 포유류의 평균 수명은 대체로 체구에 비례한다. 생쥐는 2~3년밖에 못 살지만 코끼리는 70년까지 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생쥐와 크기가 별 차이 없는 시베리아 브란트 박쥐는 41살까지 산 것이 확인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첫번째 원인을 겨울잠에서 찾는다. 겨울잠을 자면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이로 인해 노화도 늦게 진행된다. 실제로 겨울잠을 자는 박쥐가 그렇지 않은 박쥐보다 오래 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박쥐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장수 박쥐 유전자에 DNA 치유, 노폐물 제거, 종양 억제 기능이 있음을 확인했다. 모든 생명체에는 텔로미어라 부르는 DNA 끝자락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복제가 계속될수록 이것이 짧아진다. 이것이 짧아지는 과정이 바로 노화다. 이것이 어느 정도 이상 짧아지면 세포는 기능을 상실하고 개체는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런데 장수 박쥐는 2살 때나 20살 때나 이 텔로미어의 길이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장수는 그렇다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괜찮은 것은 왜일까. 전문가들은 이것이 박쥐가 포유류 중 유일하게 자유 비행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박쥐는 시속 100마일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비행을 할 때는 대부분 신진대사가 급속히 진행되며 노폐물이 쌓이고 염증이 일어나기 쉽다. 이것을 방치했다가는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바이러스 자체보다 이에 대응하는 항체가 과민 반응을 해 고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기가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쥐의 경우 이런 과잉 반응이 없다. 오히려 박쥐 DNA는 바이러스 퇴치보다 염증 억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와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단 이야기다.

이런 박쥐 특성에 관한 연구는 이제 걸음마 단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노화를 늦추고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악의 상징이자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탄받던 박쥐가 인류의 건강 증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민경훈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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