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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여름 추억, 냉면 사랑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8-25 08:13:17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김정자(시인·수필가)  

 

연일 무더위가 기록적 수치에 도전하고 있다. 말복과 입추를 지난 지도 한참인데 더위가 기승이라 마지막 더위이기를 기대하게 된다. 한 더위와 맞설 수 있는 음식으로 시원한 수박에 냉면 한 그릇이 제격일 것 같아서 계란부터 삶기 시작한다. 냉면 국물은 어제 서둘러 장만해서 냉동 고에 얼려 두었으니까. 한더위 계절 음식으로는 냉면 만한 것도 없다. 더위에 진해진 몸과 마음의 행복지수를 올리기 위해선 더 없는 안성맞춤이요 적격이라 국물 있는 냉면으로 준비했다. 면을 삶고 갖은 고명을 올리고 살얼음 육수를 붓고 보니 미각 적, 시각적인 냉면의 멋을 그냥 흘릴  수 없어 사진 한 컷을 남겨둔다. 냉면 그릇에 서린 서리가 음식 조합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아서 쉽게 젓가락질 하기가 그렇다. 젓가락으로 휘 젓고는 육수를 한입 가득 삼키다 보면 목에서부터 명치를 거쳐 시려 오는 짜릿함이 한 더위 열기를 평화롭게 식혀준다. 무더울 수록 냉면 풍미는 한층 더해 지기 마련이다. 여름이면 많이 먹게 되는 소박한 요기 거리로,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을 뿐더러 한국인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과 문화와 정서가 배어 있다. 시원한 국물을 선호하는 분들은 평양 식으로, 매콤하고 새콤하게 입맛을 자극하고 싶으신 분들은 함흥 식으로 취향에 따라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묘미도 있다. 뜨끈한 사골 육수를 곁들인 회냉면은 스트레스를 잠재우고, 얼음이 동동 떠 있는 평양 냉면은 국물 한 모금으로 나 홀로 극치에 도달하곤 한다. 음식 진가는 재료 에서부터 손맛과 먹는 분위기에, 식사를 끝낸 후에 오묘하게 남겨지는 뒷맛에 좌우된다. 

 

그 날도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상록 원 이사장님께서 교사들을 불러모아 냉면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봉사활동으로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의 노고를 작은 대접으로 나마 베풀고 싶으셨다는 말씀에 모두 숙연해졌다. 상록  원 단체는 육십여 년 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할 환경이 열리지 않는 아이들을 모아 기독 청년 회원들이 저녁마다 아이들에게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교육하는 단체였다. 학생들은 학구열로 모여들었고 교사들은 무급으로 봉사했는데 장로 님이셨던 이사장님은 자질구레한 뒷일을 돌봐 주시기도 

하시고 크고 작은 재정적인 문재도 솔선으로 앞장서서 처리하시고 계셨다. 

 

정규 중 고등학교 수업 기준을 수행하기 위해  방학도 없이 야간 수업이 이어졌는데 불 빛을 따라 찾아 든 날벌레와 모기 습격에 아이들도 교사도 팔 다리가 성한 데가 없었다. 배움을 향한 목마름으로 모여든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앞에 교사들도 밀려드는 졸음을 밀어내며 가르치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아이들은 낮 시간에 일을 하기도 하고 기술을 배우기도 하면서 배움의 길을 택했고 교사들은 직장인으로 대학생 신분으로 사랑 실천에 한 마음이 되어있었다. 식사 시간대가 되면 냉면집 입구에 늘어선 긴 줄에서 한시간 여를 기다려가며 먹을 만큼 소문난 냉면 집이었다. 그 날의 냉면은 젊은 교사들의 시대적 결핍을 채워주었다. 냉면 한 그릇으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풍족한 마음이 되어 허기진 삶을 따뜻하게 매워주었다. 냉면 한 그릇 조차 제대로 즐기기엔 저녁마다 만나지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오히려 시원한 아이스 케익을 나눠주면서 사는 일에 지친 서로의 마음을 시원하게 어루만져주곤 했던 교사들에겐 꿈같은 냉면 대접을 받는 잔치였다. 

누구나 혼자 걸어서 각자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아닐 터이다. 그 시절 아이들 등 뒤에는 투박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교사도 있었고 교실을 내어준 학교도 있었고, 이사장님 

같은 묵묵한 배려의 손길도 있었다. 근원적 진솔한 사랑이었다. 부모가 자식 대하듯 베푸는 

태생적인 사랑 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렇듯 아름다운 동행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기대감은 접지 않으려 한다. 우리 집 할배와 냉면을 앞에 놓고 그 옛날 상록 원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둘이 만나게 된 사연이며 우리 아이들을 키워오면서 그 해 여름날의 냉면 한 그릇을 추억하며 살아갈 힘을 얻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머리에 서리가 앉은 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냉면 추억을 나누었다.   

 

우리는 음식을 먹지만 실은 사랑도 함께 먹으며 살아간다 고운 추억이, 사랑이 담긴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과 어울리며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안정되고 풍요롭게 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생각이 엇갈리고 이해 관계가 엇나가도 음식 앞에서는 마음이 비워지고 겸손해지고 품위를 가다듬게 된다. 음식은 서로 주고 받기도 하고 마주보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촉매 역할로 마음을 이어 주기도 한다. 유난히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소나기가 찾아오면 얼른 달려나가 우산을 받쳐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옛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듯 생의 길목마다에는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 여름 냉면이 이끌어 낸 냉면에 얽힌 일화가 떠올라 훈훈한 온기로 냉면을 대하게 된다. 냉면을 마주 놓고 앉은 노 부부는 여름 나기를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여름이 담겨있는 추억 거리도 얼마 남지 않은 계절의 소진 앞에 묵직한 엄숙으로 중후하게 남기려 한다. ‘냉면 국물 더 주시오’하는 소리에 추억 속에 잠겨있다 화들짝 현실 시제 속으로 돌아온다. 여름의 마지막 위용이 될 것 같은 한 더위를 추스르며 여름 추억, 냉면 사랑으로 쭈욱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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