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시론] 총 쏘기를 따귀 때리듯 하는 나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25 15:06:46

시론,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한국에서 세월호 침몰이나 이태원 압사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국민들의 궐기시위로 정부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경천동지할 비극에 국민이 충격을 받는 건 당연하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그런 예사롭지 않은 참사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유일한 나라지만 국민들의 충격은 그 때 잠시뿐이고 촛불시위도 없고 광화문광장의 추모천막도 없다. 정부도, 의회도 어물쩍 넘어간다.

미국에선 페리 침몰이나 ‘스탬피드’ 압사 아닌 집단총격사건이 평균 6.53일마다 한 건씩 터진다. 지난 해 648건이 발생해 672명이 사망했다. 세월호와 이태원의 총 희생자 수(455명)보다 훨씬 많다. 올 들어서도 111일간 17건이 발생해 88명이 숨졌다. 바로 지난주에도 앨라배마주와 메인주에서 발생한 무차별총격으로 각각 4명씩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

단일 총격사건은 헤아릴 수도 없다. 지난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16세 흑인소년이 84세 백인노인의 집을 친구 집으로 착각하고 초인종을 눌렀다가 총탄세례를 받았다. 노인은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총격했다. 뉴욕에선 길을 헤매던 20세 처녀가 남의 집 드라이브웨이에서 차를 돌려 나오다가 65세 백인 집주인에게 역시 ‘묻지마’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텍사스에선 여고생 치어리더 2명이 수퍼마켓 주차장에서 자기네 차인 줄 알고 남의 차 문을 열었다가 안에서 나온 25세 히스패닉 청년에게 총격당해 중상을 입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농구공을 가지고 놀던 6세 여아가 이웃집 마당으로 굴러간 공을 주우러 갔다가 집주인인 24세 흑인청년에게 총격당해 뺨에 찰과상을 입었다. 그 아이의 부모도 등과 팔꿈치에 각각 총상을 입었다.

총을 쏜 두 노인과 두 청년은 총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도, 재산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다. 상대방은 모두 여성이거나 미성년자였다. 그냥, 기분 상했다며 상대방의 뺨을 때리는 기분으로 총질을 했다. 그들이 그런 용도를 위해 총기를 구입했을 리 만무하다. 전국 총기협회(NRA)는 총기 소유자들 중 절대다수가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이라고 옹호한다.

기분대로 총질한 사람이 엄벌을 받지도 않는다. 거의 40년전 뉴욕 지하철 안에서 승객 버니 괴츠가 5달러를 적선하라며 손 벌리는 10대 4명에게 다짜고짜 총격해 중경상을 입혔다. 한명은 전신마비 장애자가 됐다. 괴츠는 강도당한 경험을 내세워 정당방위라고 주장했고 배심은 이를 받아들여 괴츠를 총기법 위반죄로만 평결했다. 상소법원도 그에게 고작 8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윽고 노인, 동양인 건맨들도 등장했다. 올해 음력설날 LA 중국타운 몬터레이 파크의 한 댄스홀에서 72세 베트남 노인의 자동소총 난사로 11명이 숨졌다. 이틀 뒤엔 샌프란시스코 지역 농장에서 67세 중국인 인부가 동료 7명을 사살했다. 

미국인들은 해마다 10만여명이 총에 맞고 4만여명이 목숨을 잃는다. 총기위협을 당해봤다는 사람이 5명 중 1명꼴이다. 인구 100명 당 보유총기가 120정에 이른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총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한인노인 73%가 인종차별 해코지가 두려워 밖에서 혼자 걷지 않는다는 조사보고서도 있었다. 

미국 성인 71%가 강력한 총기규제법을 요구한다. 총기규제 옹호자가 총기권리 옹호자를 59-35로 앞섰다는 여론조사결과도 있다. 지난 10년간 가장 큰 격차다. 정부가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처럼 총기소지 자격시험도 치르라는 목소리도 크다. 수정헌법의 개인무장 권리를 전가의 보도로 삼는 NRA가 최근 5년 새 회원을 100만여명이나 잃어 핫바지가 돼간다는 신통한 뉴스도 있다.

팬데믹 기간에 총격사건이 치솟아 규제 목소리가 커졌지만 그래봤자 별 수 없다. 미국인들의 ‘총 사랑병’은 국민 DNA이다. 치료약이 없다. 하긴, 한국인에게도 ‘진영싸움’이라는 국민 DNA가 있다. 나라가 둘로 갈라져 허구한 날 치고받는다. 페리침몰도, 압사사고도 시비 거리다. 미국인들이 총질 않기를 바라는 것이나 한국인들이 진영싸움 않기를 바라는 것이나 모두 공염불 같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공항 총기적발 9년 연속 미국 1위
애틀랜타 공항 총기적발 9년 연속 미국 1위

지난해 440정 발견 압도적 1위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이 미 전역의 공항 가운데 보안 검색대에서 적발된 총기가 가장많은 것으로 집계됐다.애틀랜타 공항이 이 부문에서 9년

조지아 주민, 전기차 산업 지원 ‘Yes’ 구매 보조금은 ‘No’
조지아 주민, 전기차 산업 지원 ‘Yes’ 구매 보조금은 ‘No’

▪AJC 조지아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 구매 보조금 철회 찬성 52%관세강화 물가우려 반대 커공화∙민주간 뚜렷한 시각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조지아 주민들은 향

[윌셔에서] 당찬 시작

작은 장미가 한 송이 앞마당에 피었다. 지난겨울 이사 올 때부터 마당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놓인 디딤돌을 끼고 있는 작은 마당이다. 보통은 크고 작

캅 중학교서 여학생 총기자살 시도
캅 중학교서 여학생 총기자살 시도

19일 오후… 여학생 중태학교 한때 코드레드 발령교육계∙ 지역사회 큰 충격  메트로 애틀랜타 지역 중학교에서 여학생이 총기로 자살을 시도한 끝에 중태에 빠졌다. 이 사건으로 해당

내주 80년래 최고 강추위 온다
내주 80년래 최고 강추위 온다

북극발 한파 다시 남하21일부터 눈 가능성도 다음주 메트로 애틀랜타 일원에 다시 한번 강추위가 찾아온다. 눈소식도 다시 한번 예보됐다.국립기상청은 16일  “북극에서 발원한 한랭기

[정숙희의 시선] 뮤지엄에 불이 붙으면
[정숙희의 시선] 뮤지엄에 불이 붙으면

신년벽두부터 LA를 휩쓸고 있는 엄청난 화마로 걱정과 불안이 그치지 않는다. 직간접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시각각 뉴스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사상 유례없는 비극

"적색육 많이 먹으면 치매·인지기능 저하 위험 13% 증가"
"적색육 많이 먹으면 치매·인지기능 저하 위험 13% 증가"

미 연구팀 "견과류·콩류·생선으로 대체하면 치매 위험 20% 감소" 가공육<사진=Shutterstock>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적색육과 그 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치매

새해 첫 보름달 ‘울프 문’
새해 첫 보름달 ‘울프 문’

새해 첫 보름달을 뜻하는‘울프 문(wolf moon)’이 지난 14일 영국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 상공에 떠 있는 가운데 여객기가 지나고 있다. 울프 문은 늑대들이 겨울밤 보름달을

[삶과 생각] 마당발
[삶과 생각] 마당발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사노라면 집이 필요하고 집에는 마당들이 있다.  여러 사람이 활동하는 넓은 공마당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사회가

[시와 수필] 나는 바보야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안다고 나대고대접받길 바라고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김수환 추기경) 맑고 거룩한 영혼을 가진 바보의 가르침을 세상이 오늘처럼 시끄럽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