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날 베이루트 보복공습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 사살” 밝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고위 인사를 연이어 암살하며 가자지구를 둘러싼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에서 공격을 감행하면서 양국 간 직접적인 군사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가혹한 징벌”을 경고하며 보복을 예고했고 마수드 페제슈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은 “비겁한 살인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3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표적 공격으로 암살됐다. 하마스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에 따르면 하니예는 전날 페제슈키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몇 시간 뒤인 31일 새벽 주거지에서 이스라엘의 급습을 받고 경호원 1명과 함께 암살됐다.
이스라엘이 아직까지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가운데 이란 관영 매체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니예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일간지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친(親)이란 성향의 레바논 방송 알마야딘을 인용해 하니예를 공격한 미사일이 국외에서 발사됐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인근 난민 캠프 출신인 하니예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대승하며 총리를 지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 통치를 시작한 2007년부터는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를 맡아왔다. 그는 2017년 2월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를 야히야 신와르에게 이양한 뒤 같은 해 5월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된 후 카타르에서 생활해왔다. 지난해 10월 7일 가자전쟁 이후에는 휴전 협상에 참여해 하마스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이란은 이번 사건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날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긴급소집한 뒤 하마스 정치 지도자 하니예 암살에 복수하는 것이 이란의 의무라고 언급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이란 이슬람공화국 영토에서 발생한 쓰라린 사건과 관련해 그의 피 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지시했다. 페제슈키안 대통령도 “테러리스트 점령자가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겠다”며 사실상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이란은 영토를 보존하고 존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보복에 나설 경우 가자전쟁이 중동전으로 확전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도 ‘대(對)이스라엘 투쟁’에 동참하겠다며 하마스와의 연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계열 강경파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은 이날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그들은 저항의 축 전체와 전면전을 위해 상황을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마스의 연대 무장조직 팔레스타인 이슬라믹지하드(PIJ)도 이날 성명을 통해 “강탈을 일삼는 그들(이스라엘)에 하마스 형제들과 손잡고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축구장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하니예 암살 몇 시간 전인 30일 오후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를 암살했다. 슈크르는 헤즈볼라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의 전시 고문이자 핵심 보좌관으로 7월 27일 골란고원 공습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됐다. CNN방송은 “확전의 두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하마스 정치 지도자가 이란에서 피살됐다”며 “하니예의 사망은 헤즈볼라 지휘관이 레바논에서 피살된 뒤 우려스러운 시점에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하니예가 가자 휴전 협상 과정에서 하마스 대표로 나섰다는 점을 감안할 때 휴전 협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협상 판을 깨겠다는 이스라엘의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