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를 다시 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은 기어이 1년을 넘긴 채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잔혹함은 우크라이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의 손에 죽었거나 죽을 뻔한 이들의 고통,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푸틴 대통령을 향한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승리를 향한 의지로 승화하고 있다.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개전 1년을 맞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곳곳에선 전쟁으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잇따랐다. 수도 키이우의 위성도시 부차에서 특히 추모 물결이 가득했다. 러시아군에 희생된 민간인이 유독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개전 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점령을 목표로 남진하다 이곳에 들렀고,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가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차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을 “가장 끔찍했던 기억”으로 꼽았다.
집단 학살 희생자들이 묻힌 교회에서는 추모 미사가 열렸다. 러시아군에 살해된 민간인 시신들이 거리에 방치됐던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교회 벽을 두르고 있는 가운데, 희생자들을 기리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추모 미사를 찾은 나디야의 남편도 교회 뒷마당 차가운 흙 아래 묻혀 있다. 나디야는 “생각할 때마다 너무 분하고 슬프다”고 했다. 그는 눈물을 터뜨렸다가 참으려 애쓰기를 반복했다.
마을 구석에 있는 한 공장에선 러시아군이 죽인 민간인 8명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고 안드리 베르보비(55) 등의 시신에서는 고문의 흔적이 있었다. 베르보비의 부인 나탈랴는 “러시아군이 퇴각했는데 한참 동안 남편이 보이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아서 ‘그저 살아만 있어 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한 달 후쯤 이곳에 누워 있는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가슴이 무너졌다”며 울먹였다.
부차의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울음바다였다. 전쟁에서 죽은 이들의 무덤은 아직 비석도 갖추지 못했다. 무덤 주변의 꽃들은 대부분 조화였던 탓인지 유독 노랗거나, 빨갛거나, 파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영정 사진 속 많은 이들의 웃음은 역설적이게도 더 슬프게 다가왔다. 한참을 울던 한 할머니는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지, 그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기만 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럼에도 고통에 잠식되지 않았다. ‘비극을 막으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우크라이나 독립여론조사기관 레이팅이 2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는 응답자 비율은 무려 95%에 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내 승리’를 확신했다.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지난 1년은 회복과 돌봄, 용맹, 고통, 희망, 인내, 단결의 해이자 분노한 ‘무적의 해’였다”며 “올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모든 걸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파트너들이 (무기 지원과 관련한) 모든 약속을 준수한다면, 승리는 필연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러시아에 대한 반격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루슬란 스테판추크 우크라이나 국회의장은 키이우에 위치한 ‘추모의 벽’을 찾아 헌화한 뒤 “우크라이나에는 승리 이외의 대안이 없다. 그때까지 계속 단결하고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지원도 단단해지고 있다. 개전 1년을 앞두고 키이우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20일)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21일), 산체스 페드로 스페인 총리(23일) 등 각국 정상과 지도자가 잇달아 방문했다. 모두 우크라이나를 향한 강력한 연대의 약속이었다. 폴란드가 제공한 독일산 탱크 ‘레오파르트 2’는 24일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상륙했다.
<키이우=신은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