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천후·도로 붕괴에 구조 작업 지연…"생사도 몰라"
최소 8천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진이 덮친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는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부모가 속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7일(현지시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숨진 딸의 손을 놓지 못한 채 망연자실 앉아 그 곁을 지키는 아버지가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AFP 통신이 보도한 사진 속 아버지는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 사는 메수트 한제르.
그는 무너져내린 아파트의 폐허 더미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15세 딸 이르마크 한제르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
통신에 따르면 지진 발생 당시 침대에 누워 있던 이르마크는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콘크리트, 창문, 벽돌 등 잔해에 깔려 숨졌다.
구조 당국과 시민 여러 명이 이르마크를 비롯한 잔해 속 희생자를 빼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구조대가 들어올 도로가 파괴된 데다 악천후까지 덮쳐 생존자들은 잔해 속 가족을 두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진 속 안타까운 부녀의 모습만큼 카라만마라슈의 고통을 잘 드러내는 건 없을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카라만마라슈는 이번 지진의 진앙과 가까운 튀르키예 남부도시 가지안테프 시에서 북쪽으로 겨우 80㎞가량 떨어져 있다.
여러 악조건 탓에 구조 작업이 늦어지면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카라만마라슈 주민의 슬픔이 가중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이번 지진으로 조카와 아버지, 형제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알리 사기로글루는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라면서 "나는 이 폐허 속에서 형제를 찾을 수도, 조카에게 연락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40세 남성은 "어제까지만 해도 건물 잔해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렸으나 오늘 아침부터 조용해졌다"라면서 "추위 때문에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고 우려했다.
밤새 카라만마라슈 일대에서는 기온이 영하 3도까지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와 함께 지진 피해를 본 시리아에서도 지진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눈물이 이어지고 있다.
북서부 알레포주 아프린시 진데리스 마을에서는 지진이 발생한 당일인 6일 한 시리아인 아버지가 이미 숨진 아기를 품에 안고 애통해하는 장면이 AFP 사진에 담겼다.
아프린시는 시리아 반군이 장악해 구조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지역 중 하나다.
사진 속 아버지는 붉은색 담요로 아기를 감싼 채 폐허가 된 건물 잔해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진데리스 마을에서는 이튿날에도 목숨을 잃은 딸의 시신에 고개를 묻은 채 오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목격되는 등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가 속출했다.
마을 주변 묘지에선 하얀 천으로 감싼 아이의 시신을 꼭 끌어안은 채 슬픔에 잠긴 남성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잔해 속에서 어린 동생을 지켜낸 한 소녀의 사례도 소개됐다.
자신을 시리아 현지에서 활동하는 기자라고 소개한 주헤르 알모사는 같은 날 무너진 건물 잔해를 몸으로 막으면서 여동생을 지켜낸 어린 소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알모사는 "이들은 잔해 밑에서 17시간 이상을 버텼다"라면서 소녀가 구조대원을 향해 우리를 제발 꺼내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이들 자매는 무사히 구조돼 현재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모사는 전했다.
부모의 생사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사망자 8천100여 명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례만 집계한 수치다. 수색·구조 작업이 계속 진행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자가 수천 명 단위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면서 최악의 경우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만 명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