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중국인 취향 못 따라와” 혹평
“중국인들은 영웅에 대한 향수에 의존한 채 창의적인 스토리를 보여주지 못하는 배트맨 같은 미국 영화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기대만큼 흥행 수익을 올리지 못한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중국 매체들로부터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인들의 영화 취향은 이제 ‘리얼’을 원하지만 여전히 만화 속 히어로(영웅)에 의존하고 있는 할리우드가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영화예매 플랫폼인 마오얀에 따르면, 배트맨 시리즈의 최신작 ‘더 배트맨’의 중국 내 흥행 수익은 지난달 31일 기준 1억1,700만 위안을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문폴’과 ‘언차티드’는 7,468만 위안과 9,031만 위안을 각각 벌어들였다. 3편을 다 합쳐도 지난해 4월 개봉한 중국 영화 ‘시스터(我的姐姐)’가 개봉 열흘 만에 벌어들인 6억5,900만 위안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의 현재 극장 개봉률은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따라 약 46%대에 머물고 있다. 연달아 개봉한 할리우드발(發) 블록버스터 영화 3편의 실적이 저조한 것 역시 극장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반면 중국 매체들은 코로나19 상황도 상황이지만, 천편일률적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중국인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주목했다. 중국청년보는 “패스트푸드 같은 미국 영화가 중국 관객들을 지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수억 달러의 돈을 투자하고 화려한 특수 분장으로 치장했지만, 속편에 불과한 지루한 영웅 서사에 중국인들은 감명받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창의력이 결여된 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진 최근 미국 영화들은 대부, 포레스트검프, 아바타와 같은 옛 명작들과 비교된다”고 혹평했다.
세계 영화산업의 거탑인 할리우드의 창의력까지 깎아내리는 중국의 자신감은 숫자가 증명하고 있다. 10년 전인 2012년 55%를 차지했던 할리우드 영화의 중국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2019년 37%, 지난해엔 20%로 계속 추락 중이다. 할리우드가 빠진 빈 공간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인의 삶이나 중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한 영화들이 채워 가고 있다.
지난해 개봉작 ‘장진호 전투’가 대표적이다. 6·25 전쟁을 중국인의 시선으로 담아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의 승전사로 그려낸 이 영화는 중국 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8억9,000만 달러)을 올렸다. 미중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는 가운데 애국주의·반미 정서 상승 효과까지 뒤따랐다.
영화 한 편에 정치적 재미를 톡톡히 누린 중국 정부는 영화산업 투자에 직접 나섰다. 중국 국가영화국은 2025년까지 본토 스크린 수를 10만 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극장 수입의 55% 이상을 중국 영화가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발전계획’을 내놨다. 베이징 시 당국도 지난달 31일 “2025년까지 5개 이상의 영화 제작을 시 당국 차원에서 직접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