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쟁 아닌 협상을” 한발 물러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연 15만 병력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설까. 연일 째깍거리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계가 ‘디데이’를 하루 앞두고 돌연 멈추면서 전 세계의 관심은 자연스레 푸틴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다음 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 최고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 정보기관마저도 도통 속내를 읽지 못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중앙정보국(CIA) 등 미 정보기관이 푸틴 대통령의 의도를 해석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놓였다”고 전했다. 당장 그의 ‘철군 발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도 헷갈린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군을 속속 우크라이나 인근에 배치하면서 긴장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더니, 미국이 예측한 러시아의 침공 예정일(16일)을 하루 앞둔 이날 갑자기 전쟁이 아닌 협상을 원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접경 지역과 남부 크림반도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했다고도 주장했다.
다만 실제 철군이 이뤄졌는지, 또 일부 군부대 이동이 있더라도 러시아로 완전히 돌아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가 실질적 긴장완화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성급하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게 정보당국의 정보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보기관들은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국경 근처에 대규모 군을 집결시킨 이유 역시 정말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는 행보인지, 서방과의 대립 국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외교적 지렛대로 이용하려는지도 명확하게 해석하지 못한 상태다.
사실 국가 지도자의 의중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상대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중에서도 난제라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옛 소련 비밀경찰ㆍ첩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그는 이전부터 정보 유출을 경계해왔다. 도청 우려에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도 측근들에게 거의 말하지 않았다. 발언을 메모로 남기는 것도 금지했다.
게다가 미국의 대 러시아 휴민트(인적정보) 가동은 과거보다 더욱 어려워졌다. 그나마 2016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논란 당시에는 크렘린궁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CIA 스파이가 있었다. 해당 요원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행보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2017년 그가 러시아에서 추방되면서 이마저 막혔다. 이후 5년간 러시아 고위직에 겨우 줄을 대고, 통신 감청도 속속 이뤄지면서 일정 수준의 정보를 빼오고 있지만, 가장 내밀한 곳까지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평시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러시아와의 갈등 수위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선 ‘푸틴 해설서’ 부재는 서방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이날 줄리앤 스미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우리 누구도 푸틴의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 상황이 어디로 향하는지 추측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과 지속적 대화를 통해 그가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레 흘리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인질 협상가’ 전략이다. 오랜 기간 CIA에서 러시아 정보 수집을 감독해 온 폴 콜베는 NYT에 “계속 말을 걸어서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