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 임박 징후들
서방 우크라 지원무기 도착
2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의 날을 기념하며 인간사슬을 만들어 단합을 외치고 있다. [로이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큰 가운데 앞서 2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러시아 간 외교수장 담판이 가시적 성과 없이 끝난 뒤 상황은 더욱 긴박해졌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체류 외교관 가족의 대피명령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촉즉발 위기에서 정작 러시아와 서방권 사이에선 극명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 무산 등 소기의 성과를 이룰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뜻이 확고해 보이는 반면 ‘전쟁설’에 불을 지핀 서방권은 자중지란에 빠진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실제 침공이 이뤄질 경우 서방 쪽이 갈팡질팡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관은 22일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보낸 탄약 등 물자가 전날 밤 도착했다고 밝혔다. 발트 3국(리투아니아ㆍ라트비아ㆍ에스토니아)이 미 국무부의 반출 승인을 받은 대전차 미사일 등도 조만간 우크라이나에 도착할 전망이다. 영국 정부 역시 앞서 17일 무기와 “소수의 영국 인원”을 현지에 파견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나토 전력의 한 축을 차지하는 독일의 생각은 복잡하다. 러시아와의 대립을 부담스러워하는데다 우크라이나 방어 무용론에 가까운 인상을 주고 있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전날 공개된 주간 벨트암존탁 인터뷰에서 “독일은 530만 유로를 투입해 다음 달 우크라이나에 야전병원을 지원할 것”이라면서 “현재로선 무기 배송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도 쥐드도이체자이퉁 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무기) 배달이 군사적 균형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급기야 카이아힘 쇤바흐 독일 해군참모총장(해군중장)은 ‘푸틴을 존중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임했다. 로이터통신과 인도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 등에 따르면 쇤바흐 총장은 전날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푸틴 대통령을 좀 존중해주는 건 별로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며 “그는 분명 존중받을 만하다”라고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러시아가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서방 국가의 관측에 대해 “난센스”라고 일축했고, 러시아가 2014년 무력으로 합병한 크림반도에 대해선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반환받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개전이 임박했다는 구체적인 예측도 나온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시민을 철수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미국 폭스뉴스와 CNN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주우크라이나 미국대사관이 비필수 직원과 그 가족의 출국 승인을 국무부에 요청했다며 국무부 역시 24일부터 대피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 당국자를 인용해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미국 시민들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대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면서도 “미국 외교관 가족들에 내려진 대피명령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발표할 것이 없다’고만 밝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서방의 분열에 ‘꽃놀이패’를 쥔 모습이다. AFP통신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열자는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의 제안을 수락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러시아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친 러시아 정권 수립을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국 외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러시아 정보기관이 다수의 전(前)우크라이나 정치인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예브겐 무라예프 전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을 유력지도자 후보로 적시했다. 다만 무라예프 전 의원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자신은 “이미 러시아에 거부당한 인물”이라며 “영국 외무부가 혼란스러워하는 듯하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