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률 낮은데 섣부른 방역해제
독 하루 신규확진 3.9만명 최고
IMF선 독 성장률 3.1%로 하향
독일은 지난 9월 감염예방법을 개정했다. 코로나19 방역 강화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인구 대비 신규 확진자 수에서 입원 환자 수로 바꿨다.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 규제도 완화했다. 사실상 영국에 이어 독일이 서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단계적 일상 회복인‘위드 코로나’에 돌입한 것이다. 여기에는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확진자가 줄고, 봉쇄 여파로 인한 경기 침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10일(현지 시간) 독일의 질병관리청 격인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에 따르면 전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만 9,676명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후 가장 많다. 최근 1주일간 인구 10만 명당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32.1명으로 사흘째 최고 기록을 경신중이다. 수출 주도형 국가로 공급망 의존이 심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코로나19에 다시 발목이 잡혀 자칫 유럽의 ‘엔진’에서 유럽의 ‘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유럽, 코로나 재확산에 골머리
독일의 상황은 유럽에 그대로 대입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주간 역학 보고서에 따르면 이달 1∼7일 보고된 전 세계 코로나19 신규자 확진자 310만여 명 가운데 약 63%가 유럽에서 나왔다. 10명의 감염자 중 6명이 유럽인이라는 얘기다. 미주와 아시아 등 대부분의 지역은 전주 대비 감소했지만 유럽은 7% 증가했다. 사망자는 10% 늘었다.
베를린 샤리테병원의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감염병 학자는 “재봉쇄 조처를 배제하지 않은 강력한 접촉 제한 조치를 당장 하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접종률이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론적으로 너무 빨리 방역 조치를 해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독일의 1회 백신 접종률은 약 69%로 스페인(81.51%), 이탈리아(77.50%), 프랑스(76.08%), 영국(73.74%)과 비교하면 최대 10%포인트 낮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 역시 방역 완화의 후폭풍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마스크를 벗어던졌던 영국은 7월 위드 코로나 정책을 선언하기 직전 확진자가 2만 명대였지만 현재는 3만~5만 명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9월 방역 정책을 대부분 완화한 네덜란드도 최근 입원 중인 환자 수가 약 1,200명으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
그래도 전면 봉쇄는 어려워
방역 전문가들은 유럽에 경고장을 던지고 있다. 한스 클루게 WHO 유럽 담당 국장은 “유럽이 다시 팬데믹 진원지가 되고 있다”며 “현재 유럽 53개국을 가로지르는 코로나19 확산 속도는 중대한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 결과 일부 유럽 국가들은 방역을 재강화하는 추세다. 다시 태세 전환에 나선 것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추워지는 겨울에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독일은 백신 접종 완료자 등에게만 실내 시설과 행사장 출입을 허용하는 등 강화된 방역 조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이달 1일 방역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8월부터 방역 규제를 대부분 완화한 오스트리아 역시 9개 주 중 6개 주가 방역 재강화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조차도 경제 때문에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경제 충격을 감안해 전면적 봉쇄 카드를 꺼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역으로 보면 독일에서 시작되고 있는 4차 유행이 유럽 전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경제에 찬물 끼얹는 코로나
전면 봉쇄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유럽 경제에는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럽연합(EU) 경제를 대표하는 독일의 경우 경제성장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독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6%에서 3.1%로 내렸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질 경우 독일 경제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로 극심한 공급망 문제를 겪고 있는 영국에서도 코로나19가 경기 둔화의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전히 트럭 운전사를 포함해 노동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면 구인난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내수 침체도 불가피해진다.
영국의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상대적으로 좋은 편인 7%(IMF, 7월 기준)인데 팬데믹이 재발하면 목표 달성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계 초대형 금융 기업인 HSBC홀딩스는 “영국이 올겨울 코로나19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경우 수요 감소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박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