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자격으로 영국 체류하며 영어로 작품 활동…대표작은 '파라다이스'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 운명에 대한 단호하고 연민 어린 통찰" 평가
올해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탄자니아 국적의 난민 출신 소설가인 압둘라자크 구르나(73)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식민주의와 난민 경험에 천착한 구르나를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림원은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의 운명에 대한 단호하고 연민 어린 통찰"을 선정 이유로 설명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진 것은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9년 만이다.
최근 몇 년 간 스웨덴 한림원이 북미와 유럽의 문인들에게 노벨상을 몰아준 만큼 올해는 제 3세계 작가의 수상이 유력한 것으로 일찌감치 관측됐다.
구르나는 주로 영국에서 영어로 작품을 써왔다.
1948년에 태어난 그는 아프리카 동해안의 섬인 잔지바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난 1963년에는 잔지바르에 혁명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구르나가 속한 민족은 대량학살과 박해를 받았다.
그는 1960년대 말 영국 잉글랜드에 난민 자격으로 도착했고,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인 1984년이 돼서야 잔지바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최근 은퇴하기 전까지 영국 켄트대 교수로 영어와 탈식민주의 문학을 가르치면서 장편소설 10편과 다수의 단편소설을 펴냈다.
난민으로서 겪은 혼란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됐다.
그는 21세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스와힐리어가 모국어였지만 곧 영어가 그의 문학적 도구가 됐다.
구르나는 모든 작품에서 아주 흔한, 오염되지 않은 식민지 이전의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를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인도양에 있는 다양한 섬과 노예 무역의 역사, 포르투갈, 인도, 아랍, 독일, 영국 등 식민지 강대국의 다양한 형태의 억압 등을 작품 배경으로 삼았다.
구르나는 1987년 아프리카의 재능 있는 젊은 주인공의 삶을 주제로 데뷔작인 '떠남의 기억'(Memory of Departure)을 출간했으며, 1988년 두 번째 작품인 '순례자의 길'(Pilgrim's Way)에서 영국의 인종차별주의적 풍토 등 망명 생활의 다면적인 현실을 묘사했다.
1990년 전후 동아프리카에서의 탐구 활동을 토대로 1994년 출간한 네 번째 소설 '낙원'(Paradise)은 작가로서 그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에서 구르나는 19세기 후반 동아프리카의 식민지화에 대해 폭력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난민 경험을 소설로 다루면서 그의 초점은 정체성과 자아상에 집중됐다.
등장인물들은 문화와 문화, 대륙과 대륙 사이의 틈, 과거의 삶과 새롭게 떠오르는 삶의 틈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는데, 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를 뜻한다고 한림원 측은 해석했다.
구르나는 의식적으로 관습과 단절하며 토착민의 관점을 강조하기 위해 식민주의 시각을 뒤집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진실에 대한 헌신, 단순화에 대한 혐오는 두드러지며,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문화적으로 다양한 동아프리카로 우리의 시선을 열어준다는 것이 한림원 측의 평가다.
구르나는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위대한 작가들이 거쳐간 큰 상을 받게 돼서 영광"이라며 기쁨과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노벨상은 스웨덴 발명가 알프레트 노벨의 뜻에 따라 인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상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칼 구스타프 3세 국왕이 1786년 설립한 왕립 학술원으로, 1901년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노벨상 수상자는 총상금 1천만 크로나(약 13억5천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는 지난 4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까지 발표됐고, 8일 평화상, 11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공개된다.
시상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연말에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한편, 노벨 문학상은 최근 몇 년간 잇따라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2016년에는 포크록의 전설로 불리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평론가들 사이에 논쟁이 촉발됐다. 작가이기보다는 음악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문학상을 탄 것은 1901년 노벨 문학상을 처음 시상한 이래 처음이었다.
이어 2018년에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파문으로 심사위원이 잇따라 사퇴해 수상자를 결정하지 못했고, 2019년에는 수상자 중 한 명인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유고 전범 지지 행적이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