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의 ‘보복관세 전쟁’을 불러일으킨 디지털세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연달아 도입되며 디지털세를 둘러싼 글로벌 시장의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동안 넷플릭스·구글·아마존 등 거대 인터넷 업체들의 수입 증가가 예상되자 각국 정부가 과세 움직임을 강화하고 나선 결과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태국 내각은 해외 디지털서비스 제공 업체에 부가가치세(VAT)를 부과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의회에서 표결을 거쳐야 하는 이 법안은 태국에 사업장이 없는 기업이나 플랫폼 중 태국 내 연간 수입이 180만밧(약 6,887만원)을 넘는 업체에 매출의 7%를 부가세로 내도록 했다.
랏차다 타나디렉 태국 정부 부대변인은 이를 통해 연간 30억밧(약 1,147억5,000만원)의 세수를 추가로 걷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들이 태국 기업이었다면 부가세를 냈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은) 불공평하다”고 덧붙였다.
태국 이외에도 최근 동남아에서는 각국 정부가 디지털세를 속속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 경제규모 1위인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대형 인터넷 업체들이 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 판매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내도록 규정한 법안이 통과돼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필리핀도 디지털서비스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의회에 발의됐다.
로이터통신은 전 세계 정부가 디지털세 도입을 연이어 추진하는 데는 코로나19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각국에 내려진 봉쇄조치 때문에 사람들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 업체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아져 수입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1·4분기 넷플릭스의 신규 가입자 수는 1,577만명으로 시장 예상치의 2배를 훌쩍 뛰어넘었으며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같은 기간에 전년동기 대비 매출이 13% 늘었다.
앞서 미국이 디지털세를 추진 중인 EU에 맞대응 관세보복 절차에 착수하며 디지털세를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 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EU와 인도·브라질·영국 등을 포함한 9개국을 대상으로 디지털 경제활동 관련 과세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전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