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 주가 ‘자유낙하’
은퇴계좌도 동반 추락보여
401(k)·IRA·로스 등 타격
‘포트폴리오 조정’지적도
플러튼에 거주하고 있는 1965년생 직장인 최모씨는 요즘 직장인 은퇴연금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최근 몇 년 간 뉴욕증시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은퇴시기를 최소 1~2년은 앞당길 수 있겠다는 전망을 하고 있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전쟁에 401(k) 계좌가 매일 수천달러씩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최근 2년간은 증권 시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1년에 2배씩 오르는 종목들이 속출했고 은퇴계좌도 급속도로 불어났다”며 “갈수록 일이 힘에 부쳐서 일찍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려고 했는데 이 모든 계획이 무산되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당긴 관세전쟁에 뉴욕증시가 폭락하면서 401(k)와 개인은퇴연금(IRA) 등에 투자하던 미주 한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나타났다.
8일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전 세계 교역 상대국에 10%의 기본관세와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공포에 질린 증권 투자자들은 패닉셀에 나서고 있다. 상호관세율 발표일 이후 지난 2거래일(3~4일)에만 역대 최대 규모인 6조6,000달러가 사라졌다. 시장에선 이를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초 금융 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증시의 호재로 여겼지만, 주가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모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10%의 기본관세, 25% 이상의 상호관세를 줄줄이 부과하는 등 계속 시장에 메가톤급 폭탄을 투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위 ‘매그니피센트7’로 불리며 최근 몇 년간 뉴욕증시를 견인했던 대형 기술주의 주가는 거의 초토화된 수준이다. 올해 초 대비 현재 이들 기업의 주가는 최소 11%에서 최대 43%가 빠졌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21.72%), 아마존(-20.72%), 애플(-29.82%), 메타(-11.92%), 마이크로소프트(-14.8%), 엔비디아(-26.44%), 테슬라(-43.02%)로 각각 하락한 상황이다.
퇴직연금 제도인 401(k)는 직장인이 자신의 급여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해 투자하고, 기업은 일부 금액을 매칭해 추가로 적립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401(k)는 지난해 9월 기준 7,000만명이 가입돼 있으며 운용자산만 8조9,000억달러에 달한다. 401(k) 불입금의 절반이 주식형 펀드에 투자돼 있어, 주가가 하락하면 은퇴계좌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몇 년 간 지속된 증시 훈풍으로 씀씀이를 늘려 왔던 일부 한인들과 은퇴자들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에다 주가폭락 악재까지 겹쳐 상당 기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IRA의 경우도 많은 한인들이 최근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한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은퇴자들이 받는 타격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릿저널(WSJ)은 이미 은퇴한 투자자들이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트머스 경영학과의 테레사 포트 교수는 “미국 시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모든 곳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뒀지만, 이것이 계속될지 확실하지 않다”며 “전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뀐 만큼 사람들은 자산의 최적 배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주식 비중이 절반 이상 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며 “대신 채권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 비중을 상향조정하는 등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하락장은 매수의 기회가 되기도 하며 저평가된 주식이나 펀드 매입도 고려할 만 하다.
<박홍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