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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에서] 봄은 벌써 와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21 12: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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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에는 플로리다에도 눈이 왔다. 우리 동네보다 북쪽에 있는 플로리다의 주도 텔레하시는 2인치가 넘는 눈으로 온 동네가 하얗게 덮였었다. 그렇게 눈이 쌓인 것은 1958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눈이 오는 거리를 꿈결인 양 환희 가득한 얼굴로 뛰어다녔다. 눈이 오는 플로리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 진기한 풍경 속에 자신의 시간을 담으려고 저마다 찰칵찰칵 바삐 움직였다.

우리 동네는 눈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기온을 영하 가까이 끌어 내린 한파에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거리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외롭게 서성거렸다. 그 한파 끝에 난 독감에 걸렸다. 감기는 자주 앓았지만, 독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목이 조금 아픈 것 같더니 곧바로 몸살이 왔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받은 것처럼 맥없이 쓰러져 이틀을 앓았다.

 삼 일째 되는 날은 아침에 노란 별이 눈앞에서 어른거렸고 오 일째는 자다가 가슴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놀라 일어나 검색해 보니 폐에 끈적거리는 가래가 껴서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해 나는 소리란다. 의사를 만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폐렴은 아니었다.

그렇게 열흘 넘게 앓고 나서야 겨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퀭한 눈으로 집 밖에 나오니 앞마당에는 어느새 봄기운이 가득했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로 서 있던 목련 나무가 언제 봄물을 마셨는지 여섯 송이의 진홍색 목련꽃을 말갛게 피어 놓았다. 집 앞 모퉁이에는 우산을 활짝 펼쳐 놓은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모습이 단아해서 드나들며 자주 눈이 가던 나무다. 

그런데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진분홍색이 눈처럼 나뭇가지를 소복이 덮고 있다. 매일 보던 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이제야 새삼 알아차린다. 언제나 종종걸음으로 대충 보고 지나친 탓이다. 그간의 무심함이 미안해서 전화로 사진을 찍어 이름을 검색해 본다. 배롱나무란다. 백 일 동안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고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한단다. 네 이름이 배롱이구나! 배롱아. 이름을 불러본다. 꽃들이 방긋방긋 웃는 듯하다. 내가 감기를 앓는 사이 이미 한 무리의 꽃이 피었다 졌는지 나무 주위의 땅은 백일홍으로 가득 덮여있다. 마치 땅속에서 진홍색의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주변이 꽃비로 젖고 있다.

앓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센 감기를 앓고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늘 종종거리던 걸음을 멈추고 우선순위와 가치를 다시 따져본다. 수분 없이 건조하던 마음에 봄볕이 따사하게 들어온다. 내가 앓고 있는 사이, 아니 그전에도, 또 그전에도 한 폭의 수채화를 내 앞마당에 그려 놓고 봐주기만을 기다렸을 봄을,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이것 말고도 놓친 것이 있을 것 같아 주변을 찬찬히 돌아본다. 귀한 것을 잃은 줄도 모르고 앞으로만 달려갔던 지난날을 뒤돌아본다.

노란 봄볕에 눈이 부시다. 그 볕에 반짝이는 배롱나무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봄이 그려준 수채화에 나를 담아 본다.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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