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사무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한 점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러 있다. 예전에 캘리포니아 “폴 게이티” 박물관에서 거액으로 사들여 소장하고 있는 유화 <아이리스(Irises)>의 카피 액자이었다. 지인의 품격 높은 취향을 알 것 같다.
1889년 5월 고흐가 정신 발작을 일으켜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회복기에 그렸던 아이리스 꽃 그림의 밝은 색채가 선명하게 살아나고 있다.
밝은 초록색 잎과 강렬한 보라색 꽃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초록의 생동감 있는 그림에서 고흐의 생의 갈망이 드러나고 있다.
열어젖힌 창문 밖의 아이리스가 있는 풍경이 고흐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었지 싶다.
병원 정원의 꽃들이 자라고 있는 풍경은 그에게는 삶의 터전의 한 부분인 마당에서 다가오는 풍경과 다름이 없었다. 고흐가 이미 일상적인 삶속에서 쉽게 마주했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 곳에서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마당만 뒤져도 그림 소재를 충분히 찾을 수 있을 듯하구나.”중략. 남동생 데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이 마당에서 보낸다고 해도 그리 불행한 일은 아닐 것 같다.”
고흐에게는 녹색의 정원이 삶의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고 생명의 강렬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영혼의 고통과 마음이 치유되는 순간, 그의 생의 밝고 어두웠던 부분이 극명하게 살아났으리라.
고흐가 무슨 일이든지 완벽하게 추구하고자 했던 의식의 지향성은 현실의 벽에 부딪친 좌절의 연속이었다. 탄광촌의 전도 사역과 아를르 시기의 예술 창작 활동도 그랬다.
그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과 집념은 세상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오로지 후원자인 동생 데오 만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했고 그의 예술 정신을 사랑했다.
고흐가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을 때 격려와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던 데오의 사랑에 고흐는 감격했고 감사했다. 고흐도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에 동생 데오에 대한 깊은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고흐 그가 추구했던 순수한 사랑의 열망과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서 생의 고통이 치유되는 희열을 경험하고 있지 않았을까?
병원 마당에서 아이리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 그의 힘들었던 삶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리라. 아이리스를 화폭에 아름답게 옮기는 신선한 작품 활동을 통해 고흐의 영혼과 마음이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리스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고통스런 현실이 있으며 감정의 회복과 영혼의 정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도 회복 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밝은 서정성으로 빛나는 아를르 시절의 작품과는 달리 생 레미 시기의 작품은 끊임없이 분할된 두터운 터치의 색조이다.
병원 마당 한 자락의 녹색의 향연은 고양된 영혼의 세계를 지향하는 고흐의 의지를 자극 했으리라. 화폭 위에 살아난 아이리스는 밝은 초록의 풋풋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고흐의 순수한 내면의 열정이 강렬한 색채감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9년 전 애틀랜타 하이 뮤지움 전시관의 프랑스 회화 조각 전시회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회화 몇 점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고흐의 생 레미 시기의 회화였다.
<측백나무가 있는 길> <올리브나무> <별이 빛나는 밤> <선한 사마리아 인>등이 전시 되고 있었다. 키 큰 측백나무를 향해 맑은 햇살이 비껴드는 그림 앞에서 고흐의 맑은 영혼을 보게 된다.
생 레미 시기의 작품들 중 <별이 빛나는 밤>은 삶의 용솟음치는 열정과 분열된 의식의 소용돌이와 격정적인 내면의 분출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강렬한 삶의 열망과 절규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현란한 색채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 나의 시선을 끌었던 작품은 성경 누가복음에 바탕을 둔 <선한 사마리아 인>이었다.
동생 데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이 그림은 매우 독특한 화풍이다.
강도를 맞아 빈사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에 태우는 구도는 선과 피사물이 흔들리는 화법으로 그려져 고흐의 감정과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흐의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색 바탕에 기조를 이루는 작품 <해바라기>와 삶의 환희를 화폭위에 쏟아냈던 아를르 시기의 <라 그로의 평원>과 많은 회화들을 말이다.
고흐의 고결한 영혼과 내면의 순수한 열정이 캔버스 위를 물들인 삶의 풍요로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 레미 시기의 정신적인 분열과 내면의 갈등을 화폭 위에서 승화시킨 그러한 정신세계까지 공감하게 되는 것이리라.
지극히 정상적인 의식을 지녔다고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정상적 징후인 끊임없이 분열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모순을 그의 작품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가 겪었던 고통의 흔적 앞에서 영혼의 처절한 절규를 듣고 있다.
고흐는 영혼과 몸이 쇠퇴해가는 가운데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자신의 전 존재를 불살라 창작에 임했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창작 의욕에 열정을 쏟던 집념과 광기는 고흐의 예술정신의 절정이 아니었던가. 고흐의 영혼의 고통이 배어있는 그림 앞에서 숙연해진다.
그의 예술정신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한 정신 분석학적 접근은 나만의 특별한 감상법은 아닐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