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72)
미국 취업 이민 비자
TV 배우들은 극장 무대에서처럼 관객과 직접 호흡을 나누면서 극적인 짜릿한 맛과 희열을 민끽하는 그런 진미를 느낄 수가 없고 TV 카메라인 기계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메카니즘 예술인 들이다. 연극과 TV와 영화가 각기 다른 독특한 예술의 장르가 있지만 배우들에겐 연극무대가 최고인 동시에 살아있는 예술의 극치인 것이다. 그 때문에 연극 배우가 못될 바에는 차라리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해 이민을 적극 추진했다.
그 당시 우리집은 한국신학대학 앞이라 데모 주동 학생들이 억울하게 곤욕을 치르는것을 수 없이 많이 보고 고민을 하면서 젊은 꿈나무들이 정의롭고 정당하게 데모를 하면 처벌을 당하는 사회 현실과 또 부모들이 무조건 자녀들에게 데모를 못하게 저지 하면서 정의 보다는 눈치껏 약삭빠르게 실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되는 불행 때문에 이민을 선택 했고 미국에서 지금 이 순간 이민의 대한 꿈을 위해 살고있는 미완성인 노구이지만 후회없이 수 많은 인생의 아리랑 고개를 넘고 넘어가는 중이다.
정도 오피스 주기암 사장의 말을 듣고 6.25 당시 카나다군 부대장으로 부터 받았던 표창장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어 카나다 이민을 포기했다. 표창장에 대한 중요성을 전혀 생각지 않고 아무렇게나 취급 한 것을 후회 하면서 선진국들은 그런 상장이나 표창장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할 수 없이 주기암 사장과 의논한 후 미국 취업 이민을 추진하게 됐다. 주사장님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로 인해 벌티모어에 있는 쉐라톤 가구 공장에 취업 고용 계약을 맺고 노동허가를 받아 적법한 취업이민 신청을 하게 됐고 8개월 후 미국 대사관에서 취업이민 비자를 받고 미국 이민에 대한 모든 법적인 절차를 끝냈다.
참으로 뜻밖이다. 나는 행운아인가? 미국에 이민을 가 살 운명인가? 영어도 배우고 가구 기술도 배우고 미국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와 살길을 준비하고 연구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그 당시 롯데호텔 앞 미국 대사관 인근에는 미국 비자 신청자들이 성시를 이루었고 특히 가족이민 신청자들과 취업이민 신청자들이 많았고 월남 패망 후 미군 부대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대거 미국 이민 신청을 했다. 그 동안 방송국에 미국 이민에 대한 사실을 비밀로 해 왔던 것을 알릴 때가 됐다. 뜻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는 취업이민이라 경솔하게 함부로 떠들어 놓고 실수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사관에는 하루종일 희비가 엇갈리는 쌍곡선이 연출된다. 비자를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교차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 당시 뜻하지 않은 위기일발에 직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