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사이에서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메모지를 우여니 발견하고는 어느 분의 번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다. 막막하고 망연하기 이를데 없다. 전화번호에 담겨있는 기억의 부피는 얼마나 될것이며,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으며, 함께했던 시간은 얼마나 은거되어 있을까. 부디 기억이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기억은 추억을 품게하는 갸륵함으로 생을 풍요롭게도 하고 생을 나락으로 밀어넣기도 하지만 기억은 어떤식으로든 미화되어 기억줄에 저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균형과 조화로움으로 각색된 어찌보면 전적 아부형으로 유리하게 윤색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갈무리되고 비축되어져서 마치 곡간에 간수한 곡식을 꺼내듯 행복하게 꺼내볼 수 있게 예비되어 있는 것 같다. 돌아보면 추억은 늘상 미화된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니까. 기억과 착각의 차이 일까. 망각과 기억의 차이일까.
외출시엔 1, 2, 3, 4,를 호명해가며 챙겨야 한다. 1은 지갑, 리딩글래스, 선글래스, 뜨개질 거리가 든 가방이요, 2는 부분 브릿지틀니, 3은 보청기착용, 4는 마실 물이다. 아이고 내 정신을 연발하며 현관문은 불이 난다. 집을 나서서 한 두 블락쯤 지나서 어머 ‘ 창문은, 주방 렌지는 확인했던가’ 다시 되돌아와 확인해보면 습관적으로 챙겼던 기특함이 민망해진다. 냉장고 안에서 전화밸이 울리는 경험쯤은 앞서거니 딋서거니다. 복용해야할 약을 한 두번쯤은 바꿔먹은 경험자 반열에도 이미 오르게 되었거니와 열쇠나 전화기를 잊었다가 다시찾는 재주쯤은 이미 익숙해져 자랑거리에 넣어주지도 않는다. TV 를 보다 휴대폰 밸이 울리면 리모컨을 귀에대고 여보세요하는 것 쯤은 한가한 여담이 되고만다. 빨간 신호등 앞에 섰다가 신호가 풀리면서 순간 목적지가 떠오르지 않았던 경험들이며, 이것 만은 절대로 잊지말아야지하며 가슴 깊은 곳에 새겨두었는데도 너무 깊이 숨겨두어 꺼내볼 수 없는 허무. 어저께 있었던 일과가 궁금헤 일기장을 열어보는 일이 반복되면서 망각의 고마움을 새겨보게 된다. 기억상실증만 아니면 감사하기로. 싫은 소리를 들어도 물 한모금 마시고나면 잊어지고 옹이로 남겨진 상처마저도 눈에 들어오는 계절풍경에 묻혀 버리는 감사도 있다. 잊어버리자고 들면 들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까맣게 잊고싶은 한줌 기억들이 얄미울 때도 있다. 때로는 아픈 기억을 잊기위해 거리를 헤매기도 했었는데.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건망증 이야기다. 자신의 집 주소나 전화번호도 종종 잊어버려 곤경을 겪기고하고 폭펠러재단에서 받은1500불 수표도 책갈피로 사용하다 책과 함께 분실해버렸다고 한다. 어느날은 차표를 검사하는 역무원이 다가오자 부산스레 호주머니를 뒤졌지만 차표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아인슈타인을 알아본 역무원이 차표는 걱정말라고 했지만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차표를 찾아야 한다고 우기면서 ‘차표를 찾아야 내가 어디 가는지 알 수 있단 말이요’라고 했다니. 집으로 가는 길을 종종 잃어버려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신의 집에 전화를 걸려면 전화번호부를 뒤져야 했단다. 듣다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되긴한다. 캐니다 토론토대학 연구지에 ‘망각은 매우 정상적인 현상이며 오히려 뛰어난 천재성 지능의 반증 일 수도 있다’ 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인간 뇌의 기억 구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정보를 저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 현명한 의사결정이 내리기 위함이라서 불필요한 단순 정보들을 잊고 일상셍활과 전문 분야 활동,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효한 정보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의 본질은 이상적인 사고와 조리있게 정돈된 뇌세포의 기억에 근거해서 인지기능이 일을 한다. 해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듯 생각과 기억을 상실하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만다. 껍데기만 존재할 뿐. 기억이라는 배를 타고 생을 시작한 항구에서 여러 기항지를 둘러가며 긴 여행을 두루다니다 은퇴라는 크루즈로 갈아 타고 느릿한 출항을 시작했다. 기억의 단층은 두께마다 수심이 달라 건져올리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아득한 기대감으로 희미하고 요연한 기억들을 불러들이기도 하지만 유년으로 다가갈수록 단층의 색상이 풍성해지는 흡족한 행운도 숨겨져있다. 현재, 미래는 과거와의 연속성 속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가 현재요 현재를 살아갈 결과가 내일이라서 지나간 시간들이 저장된 바탕 위에 현재가 존재할 있음이요 현재가 가져다주는 미래를 예상할 수있는 빌미가 되어준다. 미래를 제시해주는 것이 지난 날들이라는 것이다. 기억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서 기억의 상실은 미래의 향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의 단층 또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의 기록이라서 그 유효성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어느 순간 빗금을 그어버리면 세월의 습곡 속으로 생의 단애가 들어서지는 않을런지. 기억 줄이 얽혀가는 것 조차에도 감사를 심어두기로 했다. 남은 날 동안의 여정에서 부끄럽지 않은, 괜찮은 삶이었노라고 기억의 단층에 남겨졌으면 하는 소망을 붙들어 두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