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해 절해고도 무인도에 칠십 노인이 혼자 살고 있는 영상을 보게되었다. 해류따라 떠내려온 것들로 낚싯배를 만들고 잡은 고기를 식량 삼으며 대나무 숲이 있는 언덕 아래 우물을 만들어 식수로 사용하면서 그리 불편 없이 유유자적 살고 있었다. 지나는 배들이 하나 둘 건네준 생필품이며 양념들이 선반 가득이었다. 세상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 들으며 흔들리는 낚싯배 위에서 거센 바람도 만나고  아우성대는 하늘을 만나며 바다와 함께 웃고 파도에 실려 울음을 토해내며 섬을 혼자 걸으며 섬이 되어버린 노인을 보았다. 바다의 투명한 마음을 만지며 파도와 마음을 나누고 돌아 갈 길이 없어진 섬이 되어 다시는 세상을 미답[未踏] 하겠노라 다짐하며 섬을 홀로 밟고 있었다.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이 연상된다. 세상이 아수라장 같다고 느낄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시이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단지 두 연으로만 씌여진 시인데도 오래도록 울림이 공명된다. 독자층이나 평론가 측에서도 풀이가 분분하다. 시를 반복적으로 음미하다보면 현대인들의 외로움, 소외감, 고독의 존재성이 느겨진다. 외따로이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싶은 인간 존재의 참다운 이해를 요구하는 함축성이 시의 핵심이며 운율보다는 상징적 의미 전달에 치중한 시로 많은 독자들을 열광케한 시이다.


섬은 인간의 고독과 맞닿아 있다. 마치 가도가도 끝닿은데 없는 수평선처럼. 인생들은 저마다 섬으로 살아가고있는 것이라서, 당당한 품새를 서로 뽐내며 살아가고들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고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마음에 물길이 가로놓여 단절위기에 놓여있는 현대인들의 소통열망의 암시로 받아들여진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섬으로 가고싶다는 생각을 뛰어넘어 스스로 섬사람이 되어버린 노인의 회환을, 세상으로 부터 등 돌려버린 섬 노인의 회오가 연연히 보여진다. 섬이 되어 살다보면 태고로 부터 파도에 시달려온 섬 이야기를 들을 수있을 것 같기도하다. 묵상으로 독대할 수 있는 기도 영역을 섬에게서 배우며 섬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보고 듣고 젖어들고 싶어진다. 섬이되어 산다는 것은 유한한 인생의 그리움의 비롯이 아닐까. 바위에 부딪히는 물거품같은 서글픈 인생을 외면하고 싶은,  무한한 영원을 받아들이려는 몸짓이라 하고싶다. 


태고의 원시인들도 고독을 느끼고 외로워했을까. 현대문명이 고도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성과 어떻게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목말라하며 정답없는 방황을 해왔다. 일찌기 생의 고독을 알았기에 이를 넘어서기 위해 인생들은 투지를 갖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주제는 삶과 죽음이요 삶은 처절한 투쟁이었다. 이 투쟁에 임하는 인생들은 어디서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를 고독이란 바다와 맞닿이면서 멀리 떠있는 섬을 그리워하게된 것이리라. 아득한 바다 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고도를 바라보면 망연한 막막함이 느껴진다. 섬이 던져주는 서술적 묘사로는 고립감, 끝없는 막연함, 쓸쓸함에 덧대어 소통의 단절이 던져주는 갈망을 보게 된다. 섬 이야기는 지식의 높고 낮음에 기대기보다 조금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흐릿한듯 여린 시야에 들어오는 이야기 들을 다루어야 옳을 것 같다. 미물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방대함에서는 물러서고 싶음이라서. 사실적이고 관념적인 면에서 오류로 치부해버릴 수도 없는 것은 섬을 주제로 쓰여진 수 많은 글들을 빚어낸 작가들의 노고에 빚지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언제나 섬 이야기에는 빛나는 무언가가 숨겨져있는 것 같다. 멀고 먼 태고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무방할 것이다.인류역사가 시작된 그 무렵 부터 인간들의 삶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리라. 섬을 그리워하는 인생의 유한성 바탕이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라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본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의 에덴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섬으로 가고싶은 마음들은 드러내지 않은채 은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고도(孤島)를 찾아 나서고싶은 행위가 인간의 본질과 오랜 옛날 부터 긴밀하게 엮여있었을 것 같은 확신이 밀려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물길 탓에 섬은 누구에게나 이향 땅이 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어차피 낯설고 물설은 이국에선 사시사철 마주하는 고달픔이 아니었던가. 이방인으로 해를 거듭하는 동안 이민자의 역사라는 삼각주가 조성되어 가는 것일게다. 방대한 미국이란 바다 가운데 애틀랜타 한인사회라는 섬으로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만큼 절대적인 일 또한 없을 것이다. 현존 자체 만큼 확실하고  소중한 일도 없는 것이라서 하루하루 최선껏 살아내야 한다는 책무감이 벅차게 차오른다. 해서 섬 이야기는 다시금 일상에서 밀려나 버리는 형국이 되어버리지만, 일상 중에 섬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여망이 불쑥불쑥 부유물처럼 떠오를 터인데 이 떠오름을 어찌 다독여가야 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