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33)
6.25 참전 재일동포
보급중대 식당 총 책임자로 요리를 총괄했던 전성기는 지나가고 5명의 요리사가 주방장 지시 하에 일을 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됐다. 어디에서 왔는지 식당 그릇들을 닦는 한국 사람도 3명이었고 식당 테이블과 설탕, 소금, 버터, 잼 등을 비치 정리 정돈하는 일본 동포도 있다. 그 중 한명은 인천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 한 후 8군을 통해 온 나이 어린 친구 였는데 나와는 같은 천막에서 생활하며 각별히 친하게 지냈다. 이름은 박준규 인데 그는 저녁마다 식당에서 먹을 것을 잔득 가지고 와 신나게 먹어 치우며 이런 것들이 인천 시장에서 얼마나 비싸고 귀한 것인지 아느냐고 했다. 명랑하고 자유분망한 친구인데 그가 경솔하게 큰 문제를 만들었다.
사고의 발단은 재일동포 식당 테이블 담당자와 사이가 좋지않아 다투고 미워한 나머지 어느날 저녘 쪽발이 왜놈을 혼내 준다며 재일동포가 테이블을 모두 다 정리 해 놓고 퇴근 한 후 설탕과 소금을 모두 섞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러온 군인들이 커피에다 설탕을 탔다가 짜고 써서 질색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식당 책임자가 현장 조사를하고 군인들에게 사과를 했고 재일동포는 문책을 당하는 곤혹을 치렀다. 끝내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테이블 담당자 재일동포는 범인을 짐작하고도 증거가 없어 침착하게 참았다. 나는 범인을 알고 있지만 친하게 지낸 준규군을 고발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재일동포 요리사와 식당 테이블 담당자를 미워하고 일본놈, 왜놈 하고 차별 했던 참으로 못되고 무지 했던 죄인이었다.
훗날 알게 된 일인데 그들은 6.25 전쟁 중 조국을 위해 참전한 민단 측 재일동포들로 미군 소속으로 전투를 했던 애국 동포들 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6.25 당시 참전 했던 재일동포들의 희생과 업적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지 않고있다. 그들은 미군 특수요원으로 싸웠던 군번 없는 군인들이다. 미군과 재일동포 민단과 함께 추진한 특수 지원병인 관계 때문에 그들의 업적은 현재 흔적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들이 일본으로 돌아간 한참 후에 그 내용을 알게 됐다.
법적인 근거와 군번도 없이 미군과 함께 특수요원으로 싸우다가 휴전이 된후 민간인 신분이 된 그들은 그동안 조국과 미국을 위해 싸웠던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포부 당당하게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다가 일본 정부의 입국을 거부 당했고 그들은 여권도 법적인 증명도 없어 미군 사령부에서도 어쩔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일 간 국교도 단절된 상태라 미,일 간 외교적 법적인 해결이 될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돼 거처 할 곳이 없는 그들을 미 8군에서 UN군 각 부대에 근무하게 했다. 그 때문에 재일동포가 이곳 카나다 군 부대 식당까지 와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경솔하게 그들을 미워하고 못되게 행동을 했다. 본의가 아니고 모르고 저질은 실수 였지만 재일동포 참전용사들에 대한 잘못과 죄를 뇌우치고 백배 사죄 하면서 용서를 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제일동포 참전용사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 공로를 영원히 기억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