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권명오
수필가 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65)
연극 안토니오 크레오파트라
비디오 테이프로 방송극을 제작하게 된 후 새 연속극 이철향 작 이성재 연출 '정명아씨'에 출연하게 됐다. 주인공은 김민자 씨와 나 그리고 최정훈씨 였고 절찬리에 끝난 그 연속극으로 인해 김민자씨가 스타덤에 올랐다. 비디오 테이프 발명은 TV 방송에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가 됐지만 방송국에서는 비디오 테이프 값이 너무 비싸 녹화한 작품을 재방송을 위해 보관하지 못하고 지운 다음 다시 다른 작품을 계속 녹화해 화면이 나빠 질 때까지 사용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방송 제작비는 개선되지 않고 신인 텔런트 모집은 계속 돼 배우들의 뽑히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 졌다.
그 때문에 PD 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비밀리에 곗돈을 내 주면서 배역을 사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부정행위가 만연돼도 문제를 제기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잘못 했다가는 왕따를 당하고 매장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후배 텔런트들은 일년동안 한번도 출연하지 못하는 열악한 형편이다. 연기력을 펼칠 기회조차 전혀 없는 기막힌 실정이었다. 그렇게 갖은 고난을 다 겪은 후배들이 몇 십년 후 훌륭한 연기자가 되고 스타가 된 것을 훗날 미국에서 보고 너무나 자랑스럽고 훌륭해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그들의 노력과 인내에 경의를 표하고 뜨거운 박수룰 보내면서 일찍이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이민을 선택한 나 자신을 돌아보며 패자의 자조를 거듭하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방송 출연 스케줄이 없던 어느날 소극장인 동인극장 연출자 정일성씨가 동인극장에서 쎄익스피어 작 '안토니오 크레오파트라'를 공연하게 됐는데 특별 출연을 해 달라는 것이다. 때 마침 연속극 출연도 없고 연극한 지도 오래돼 출연을 결정했다. 배역은 로마 삼두 정치인 씨저스, 안토니오, 래피데스 중 한 사람인 집정관 역이었다. 그리고 크레오파트라 역은 당시 KBS-TV 인기 여자 텔런트 였던 김난영씨를 내가 추천했다. 안토니오 역은 고 운계영씨 였고 씨저스는 고 이진수씨 였으며 그 외에 훌륭한 연기자인 김순철, 오지명, 김인태, 최지민씨 등 이었다.
세계적인 대작이라 연습 도중 많은 것을 배웠으며 연출자인 정일성씨의 세밀하고 철저한 작품 분석과 연출에 따라 연극에 도취되면서 연극에 대한 차원 높은 예술성과 신성한 연기에 빠진 채 영화나 방송 드라마에서는 도저히 맛 볼 수 없는 종합예술의 진미를 실감케 됐다. 기나긴 연습 과정과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연극을 할 수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시 연극이 최고의 종합예술이다. 하지만 연극이 아무리 좋고 훌륭해도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 그 때문에 초창기 소극장 운동을 하면서 계속 연극만 고집해 온 연극 외길 인생들이 존경스럽고 위대하기 이를 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