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과테말라에서 이민 온 “안드레”는 선한 눈빛과 항상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 순수한 청년이다. 그의 나이가 18세가 되었으니 이미 성년이지만 실제 나이보다 앳돼 보인다.
나이에 비해 훤칠하게 큰 키에 쌍꺼풀 진 검은 눈과 콧날이 오뚝하고 준수한 용모이다.
그가 작년 늦가을, 음식점(Catering)에 와서 보조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 막내인 그를 베이비(어린애)로 부른다.
열심히 일을 배우는데 진지하고 눈썰미가 있어 선배들이 그를 귀엽게 여기며 사랑하고 있다.
그와 함께 교회로 음식 배달을 가는 날이 있다.
무겁고 힘든 일을 척척 손 쉽게 하며 도움을 주고 있어 고맙게 여기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젊음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또래의 손자를 두고 있는지라 착한 그가 믿음직하고 대견스럽다.
손자 같은 느낌이 들어 언제나 그의 등을 정답게 토닥거리며 격려와 친근감을 표현하고 있다.
사랑의 표현에 기분이 좋은지 어떤 때는 그도 나의 등을 정겹게 토닥토닥 거린다.
‘콘도르’하며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은 어느새, 서로가 사랑의 교감에 의해 친밀함이 깊어가고 있나보다.
‘콘돌’(남미 산 독수리)이라는 애칭은 가끔, 액세서리인 독수리 황금색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나에게 그의 선배들이 부쳐준 호칭이다.
독수리 목걸이를 부러워하면서 늘, 남다른 관심을 표명하는 젊은 멕시칸이 있다.
어느 날, 목걸이를 하지 않은 나에게 ‘독수리는 어디로 갔느냐’는 물음에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 ‘독수리는 날아갔다’라고 유머로 받아 넘기자 옆의 동료들이 웃음보를 터트린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의 대한 애칭이 ‘콘도르’가 된 것이 싫지는 않다.
독수리처럼 높게 날(비상) 수 있는 자유를 열망하고 있는 내 모습에 울컥 할 때가 있지 않는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이먼 가펑클의 <엘 콘도 파사>의 히트송이 다시금 심금을 울리고 있다.
향토색 짙은 잉카 특유의 피리 소리가 애조 띤 선율에 실린 서정적인 곡이 아니었던가.
안드레는 아버지와 함께 이민 와서 힘들게 살아가는 고통스런 이산가족이다.
그가 과테말라에 있는 어머니 곁을 떠나 온지 몇 해나 되었을까?
그는 자신의 장래의 꿈과 어머니를 먼저 만날 수 있는 염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있을 터이다. 그의 식탁에서 기도하는 진지한 모습과 애잔한 눈빛 속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를 먼저 만나기를 원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머리를 끄덕이는 순간, 눈빛이 슬프게 흔들렸다. 그의 눈빛에 깊은 슬픔의 감정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를 속히 만나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안과 사랑의 입맞춤을 그리워하는 그의 가슴 아픈 사연에 비감해 진다.
그에게는 어머니를 만나는 꿈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아닌가.
그는 지금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값진 체험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모자가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안타까운 고통의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다.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의 삶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역설을 어린 나이에 힘들게 체득하고 있는 셈 이다. 그것은 그의 꿈이 실현 될 미래의 가능성을 향한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 성숙해지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그의 성실성과 근면성을 귀하게 여겨 고통스런 기간을 단축시키시며 인도하여 주시리라 믿는다.
그가 반듯하게 성장하여 성숙한 인격체로 발 돋음 할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된다.
안드레의 어머니를 향한 기도와 애처로운 마음이 하나님의 위로와 용기로 역경을 넉넉히 이겨내길 바란다. 안드레가 어머니를 만나고자하는 소망과 간절한 기도가 속히 응답 받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