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오.
지천( ) 수필가 . 칼럼니스트.
Ⅰ. 한국 38년(13)
인민군 치하 귀향 길
철환이 형과 나는 아침 일찍 할머니를 아저씨 집에 남겨 놓고 고향 적성을 향해 출발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인데 형 친척 아저씨도 북한 공산당 빨갱이었다. 참으로 사람속은 알 길이 없다. 기찻길을 따라 문산으로 가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피난민들이 줄을 이었고 우리는 우연히 형이 잘 아는 문산농업 졸업생 선배를 만나 동행하게 됐다.
선배 가족은 문산 인근 탄현면에 살기 때문에 그 집에 가서 문산의 형편을 살펴본 다음 문산을 거처 적성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수색역을 지났을 때 별안간 나타난 비행기가 기관총 사격을 가했고 피난민들은 철뚝 밑으로 엎드렸다. 나도 엎드려 쳐다보니 비행기 날개에 USSR 이라는 글자가 선명해 미국 비행기 인줄 알고 형 US야, 미국 비행기야 , 했더니 형이 이 자식아 US면 다 미국인줄 알아 ,하고 소리쳤다. 북한 (러시아) 비행기는 우리 앞 전방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가한 후 사라졌다. 알고보니 북한 비행기는 수색과 봉일천 사이에 있는 국군 장병들에게 사격을 가한 것이였다. 그 당시 의정부를 거쳐 진격한 인민군이 미아리 고개를 넘어 서울을 점령 했고 개성에서 문산을 거쳐 진격한 인민군들은 국군의 강력한 저지로 인해 금촌에 머무른 상태라 수색과 금촌 사이는 인민군이 없고 국군들뿐 이였다. 국군들은 서울이 인민군들에게 점령 당하자 할수없이 군복을 갈아 입고 행주나루를 통해 한강을 건너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 이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남한으로 향하는 군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그들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저녘 무렵 문산 인근 탄현면 학교 선배집에 도착해 보니 마을은 평온했고 전쟁의 상처도 전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문산도 별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인민군 천하가 된 문산으로 무조건 들어갈 수도 없어 며칠 간 선배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선배네 집이 살기가 어렵고 식량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 때문에 그 집에 더이상 있을 수가 없게 됐다. 하기사 그 당시는 거의 다 살기가 힘들고 어려웠다.
형과 나는 어두운 밤 연못가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했다. 죽든살든 무조건 문산을 거처 고향 적성 가월리로 갈 것이냐 아니면 다시 서울로 갈 것이냐를 결정 해야 될 순간이다. 철환이 형은 다시 서울 아저씨 집으로 갈수도 있지만 나는 갈 곳이 없다. 그리고 진형구 아저씨집은 찾을 수가 없으니 기막힐 뿐이다.
철환이 형을 따라 가난한 신촌 친척 집으로 갈수도 없는 처지다. 철환이 형은 아버지가 적성면 부면장 이었기 때문에 자기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다시 서울로 가겠다며 날보고 매정하게 알아서 하라며 자리를 떴다. 무조건 다음날은 그 집에서 떠나야 된다. 어두운 밤 조각달이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연못가에서 하염없이 나도 모르게 아리랑을 부른 후 케쎄라 쎄라 될대로 되라고 운명에 맡겼다. 아침 일찍 문산에서 온 마을 사람이 찾아와 지금 문산에서 오는 길인데 그곳에 인민군들이 많지만 민간인들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가라고 했다. 철환이 형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변해 나와 함께 문산으로 가게 됐다. 문산에 도착하니 인민군들이 거리를 오고 갔으나 우리를 보고 아무 말없이 지나쳤고 평온했다. 철환이 형과 나는 아무 일없이 우리가 살던 선유리 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