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베테랑스 에듀
김형준 법무사팀
첫광고

‘신의 물방울’ 하루 지나면 더 맛있는 이유는

지역뉴스 | 라이프·푸드 | 2018-03-16 09:09:00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는 기상천외한 와인 품평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엽기적인 표현은 ‘유아살해’일 것이다. 최소 10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와인인 샤토 무통 로칠드 2000년산을 전혀 숙성이 안 된 상태로 삼켜버리는 모습을 보며 탄식하듯 내뱉은 것인데, 결국 초능력 수준의 재능을 발휘한 주인공 덕에 유아 상태였던 와인은 순식간에 성숙한 어른이 된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듯 병에 담긴 와인을 가느다란 물줄기로 바닥이 넓고 입구가 좁은 투명 용기에 옮겨 담고(디캔팅), 잽싸게 몇 차례 빙빙 돌리는(스월링)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잠시 후 맛을 본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맛있어!’ ‘오호! 이거 당혹스러운걸!’

‘신의 물방울’의 이 같은 극적 장면은 디캔팅에 대한 그릇된 환상을 심어놓았다. 어떤 와인이라도 숨을 쉬게 만들면 숨어 있던 맛과 향이 드러나면서 꽃을 피울 것이라는 환상.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디캔팅이 모든 와인에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때론 디캔팅이 와인의 품질을 떨어트리는 경우도 있다. 디캔팅까지는 아니라 해도 코르크 마개를 딴 뒤 30분이나 1시간 정도 지난 뒤 마셨을 때 맛이 더 좋아졌던 경험은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개봉한 지 하루가 지난 와인의 풍미가 더 좋아지는 일도 드물게 생긴다.

공기에 오래 노출된 와인이 변질된다는 것은 상식인데, 단기적으로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기에 맛이 좋아지는 경우가 생기는 걸까. 유럽의 명문 와인 교육기관 영국 WSET 본원의 공식 인증을 받은 국내 유일의 와인 교육 기관이라는 WSA와인아카데미의 박수진 원장에게 물어봤다. “와인 속 타닌이 산소와 만나면 훨씬 부드러워지고 와인이 품고 있는 다양한 향도 발산이 잘 됩니다. 디캔팅의 목적은 와인의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을 제거하는 한편 공기와 접촉면을 넓혀 떫은맛을 나게 하는 타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이지요.”

와인을 옮겨 담아 공기와 접촉하게 하는 과정은 ‘에어레이션(Aeration)’ 또는 숨을 쉬게 한다는 뜻으로 ‘브리딩(Breathing)’이라 부른다. 이때 주로 숨을 쉬는 주인공이 바로 타닌이다. 폴리페놀 화합물인 타닌은 여러 하위 단위의 단량체가 모인 큰 중합체로 단순한 구조부터 복잡한 구조까지 다양한 분자구조를 가진다. 와인 한 병 안에도 수백 가지 구조의 타닌이 존재하며 미묘한 맛의 차이를 만든다.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타닌은 단백질과 잘 결합하는데 타닌이 떫게 느껴지는 것도 침 속의 단백질과 결합해 침전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육류가 타닌 함량이 많은 레드와인과 잘 어울리는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와인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타닌의 화학적 변화 과정에 관해 과학적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술인 와인에 어떤 과학적 비밀이 숨어있는지 아직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다만 타닌의 변화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영국의 생물학 박사이자 와인 컬럼니스트인 제이미 구드는 “와인 속 타닌은 연구하기 무척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에 고도로 정교한 분석 장치로 연구해야 한다”며 “아직은 과학적 데이터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와인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를 단정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타닌은 와인 숙성 과정에서 중합반응을 거치며 반복적으로 끊어지고 재구성되면서 화학적 구성이 변하는데 이런 변화가 와인의 맛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견해가 현재로선 통설이다. 와인의 다양한 향도 타닌의 축중합작용을 통해 조합된다. 마찬가지로 디캔팅과 에어레이션이 타닌의 분자구조 변화를 일으켜 맛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손홍석 동신대 한의예과 교수는 “디캔팅에 관한 과학적인 데이터는 없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디캔팅의 효과가 미미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겐 인지가 가능한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고려대 와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을 지낸 와인 전문가로 최근 ‘와인 이즈(Wine Is)’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타닌이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분해되거나 다른 화합물과 결합해 침전됨에 따라 와인의 맛이 부드러워진다”면서도 “타닌이 제거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하루 동안 와인을 열어놓는다고 해서 타닌 성분이 갑자기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타닌은 포도의 씨와 껍질에 많은데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에서 우러나기도 한다. 껍질과 씨를 제거한 채로 만드는 화이트와인은 타닌 함량이 적어서 에어레이션 과정이 필요 없다. 레드와인도 포도 품종에 따라 타닌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에어레이션 시간 역시 달라진다. 숙성 정도는 그보다 더 중요한 변수다. 박수진 원장은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타닌이 강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디캔팅이 필요하지만 피노 누아나 멀롯 같은 품종은 디캔팅 필요성이 덜하다”며 “충분히 숙성된 와인은 풍미가 이미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공기와 접촉하면 금방 맛이 변질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와인은 얼마나 공기를 접촉해야 좋은 걸까. 박 원장은 “품종, 빈티지, 숙성 정도, 보관방법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고 디캔팅 과정에서 자주 확인하며 마시는 방법밖에 없다”며 “맛과 향이 완성되지 않은 영(young)한 와인이라 해도 1시간에서 2시간 사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특별한 와인이 아닌 이상 하루 이상 열어놓는다고 맛이 좋아지진 않는다는 얘기다.

혹시 와인의 부패와 산화를 막기 위해 넣는다는 무수아황산이 빠져나가면서 맛이 좋아지는 건 아닐까. 박 원장은 “무수아황산은 아주 적은 양만 들어가기 때문에 와인의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마개를 열면 금방 공기 중으로 날아가거나 없어지기 때문에 아주 예민한 사람을 제외하면 맛에 차이를 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고경석 기자>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조지아 환경당국, SK배터리에 벌금 3만3천달러 부과
조지아 환경당국, SK배터리에 벌금 3만3천달러 부과

배터리 폐기물 관리소홀로 화재 SK배터리아메리카(SKBA)가 조지아 환경당국으로부터 3만3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AJC는 지난달 30일 잭슨카운티 커머스 소재  SK배터리

연준, 금리 5.25~5.50%로 6연속 동결…"인플레 여전히 높다"
연준, 금리 5.25~5.50%로 6연속 동결…"인플레 여전히 높다"

"최근 물가 목표 향한 추가 진전 부족…인플레 리스크에 고도로 주의"연준, 양적 긴축 속도 조절…"월별 국채 상환 한도 250억 달러로 축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

조지아 셰리프, 불체자 이민국에 신고해야
조지아 셰리프, 불체자 이민국에 신고해야

켐프 주지사 HB1105에 서명 조지아주 셰리프들은 앞으로 구금된 사람이 허가 없이 조지아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연방 이민국 직원과 의무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브라이

마리화나, 조지아 약국 판매 전면 허용될까
마리화나, 조지아 약국 판매 전면 허용될까

현재 9개 판매처가 1만8,000명에 공급연방정부 대마를 스케줄3로 하향 조정 마리화나(대마)를 덜 위험한 약물로 재분류하려는 연방정부의 계획은 조지아의 의료용 마리화나 환자에 대

한국형 건강검진센터 LA 에 들어선다
한국형 건강검진센터 LA 에 들어선다

서울대·분당서울대병원-SL 재단 공식계약 체결...진료협력 시스템 구축세리토스에 4만 스퀘어피트 규모, 내년 개원, MRI 등 최첨단 의료 장비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과 미국 S

한인 도널드 리, 귀넷 소년법원 판사 취임
한인 도널드 리, 귀넷 소년법원 판사 취임

한인 도널드 리씨가 4월 30일 로렌스빌 귀넷사법행정센터에서 귀넷카운티 소년법원 판사에 취임했다.이날 취임식에는 안젤라 던컨 귀넷 슈피리어법원 판사, 샌드라 박 프로베이트법원 판사

흥난 관객들 “원더풀!” 외치며 기립박수
흥난 관객들 “원더풀!” 외치며 기립박수

퓨전 국악밴드 ‘고래야’ 애틀랜타 공연지난달 30일 로렌스빌 아트센터서 한국의 6인조 퓨전 국악밴드 ‘고래야(Coreyah)’가 지난달 30일 오후 7시 30분 로렌스빌 아트센터에

조지아, 학자금 빚 전국 5위
조지아, 학자금 빚 전국 5위

상위 10개 지역 중 9개가 동부조지아 1인당 35,000달러 GOBankingRates 회사가 전국 50개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연구 조사에서 조지아주 밀레니얼 세대들의 학자

월마트, 조지아 헬스센터 17개 폐쇄
월마트, 조지아 헬스센터 17개 폐쇄

전국 5개주 51개 보건센터 완전 폐쇄스와니, 마리에타 등, 만성 적자 원인 월마트가 조지아주를 포함해 5개주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건센터 51군데 전부를 5년 이내에 모두 완전 폐

봄맞이  집안‘서류 대청소’해 볼까?
봄맞이 집안‘서류 대청소’해 볼까?

봄맞이 대청소에 나서는 가구가 많다. 의류에서부터 주방용품까지 버릴 것은 버리고 앞으로 사용할 물건은 잘 정돈해야 남은 1년을 깔끔히 보낼 수 있다. 봄맞이 대청소에서 빠트리면 안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