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뜻을 들여다 보는 듯 시원하고 통쾌한 시다. 얼마나 오랜 세월 안다고 서성대고 살아 온  부끄러운 지난 날들이었나---

지금보다 더 젊은 날 이 세 마디 시를 알았더라면 그 안다고 서성이던 부끄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을---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쏟아지는 글꾼들의 글을 보면서 글 쓴다는 일이 얼마나 부끄럼인지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쏟아지는 책들, 정보 시대가 사람을 과연 참된 인간을 만들어 왔는가 의문으로 남는다.

인간은 그리 쉽게  참 지혜를 얻기도, 참 인간이 되기도 쉽지 않다. 그 옛날 ‘사서오경’ 한 권의 책으로 과거 급제를  했고 참 지성을 지닌 인간을 발굴했고 국가에 큰 공헌을 할 과거급제 인물을 발굴했었다. 인간이 참 지혜를 얻기도 쉽지 않고  홍수 처럼 쏟아진 책들 속에서도 그 길을 찾기란 그리 쉽지않다. 

어느날  절에서 일하던 행자승이  큰 스님에게 “스님 ‘본래 면목’이란 무엇입니까?”  묻자 큰 스님이 몽둥이로 행자승을  때리면서 “이놈아! 네 면목도 모른 놈이 ‘본래 면목’은 왜 묻느냐 ?” 하시더란다. 

대나무가 자라면서 한 마디 한 마디를 키워 올라가는것 처럼 인생길에도 참 지혜, 깨달음이란  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나는 왜 지금도 붓을 놓지 못하는가? 가끔은 부끄럼이 앞서는 나 자신의 물음이다. 그러나 나 자신의 정진을 위한 끝없는 도전이다.

남은 생 어떻게 살 것인가? 젊어서는 부끄럼 없이 모르는 것도 모르고  아는 체 살아왔던 지난 날들 , 이제는 겸허히 “모릅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위해 --살고 싶다. 다행이다. 괜찮아! 나를 다독여 주는   위로가 있지 않는가. 

몇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셨다. 위로 차 엽서를 보낸 이는 ‘홀 사모’ 란 말의 엽서가 날아왔다. 누군가하고 한참을 돌아다 보니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그 뿐인가-- “집이 너무 크니 팔고 작은 아파트로 가시오.” 별의 별 화살이 다 날아왔다. 도대체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야---

나는 그때마다 괜찮다! 괜찮다!. 그 한마디로  나의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 나를 다독였다. 

나는 이제부터 ‘참 나’로 살기로 한다. 마음 편히 남은 생을 아름답게 살기로  노후 재충전을 위해  죽음까지도 받아들이는  참 나를 찾아-- 살기로한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 못 다한 일들이 너무 많아  이제부터 ‘참 나’로 살고 싶어진다. 노년에는 자식에게 손 내미는 노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몇 년을 방치해 두었던 사업체를 재정비하고 코로나로 어렵던 시절도 잘 버텨 나갔다.  나의 모교 숙명여대를 위해 일할 기회에도 감사한다. 숙명의 터위에 겨례를 이끌어갈 여성 인재를 키워야지, 후배 양성을 위해 숙명에서 어진 여성후배들이 양성되기를 염원한다.

인생의 나이는 새롭게 살아갈  준비로 새롭게 태어나면 오늘이 내 생의 남은 첫 날이다.

모자라도 글을 쓰며, 노후에 외롭지 않을 친구들과 더불어 그림도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나의 정원 뜰에 아침에는 예쁜 새들이 찾아오고 이름모를 꽃들과 바위, 솔들과 더불어 남은 생  참 나, 살면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