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공화당이 주도하는 조지아 주 의회는 소수민족의 투표권을 대폭 위축시킬 수 있는 투표법을 전격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조기투표 기간을 단축하고, 또 매일 투표하는 시간을 줄이며, 부재자 투표 자격을 축소하고 또 공직자가 조기투표 신청서를 주민들에게 보내는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와 2021년 1월 두 명의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을 뽑는 선거 개표를 할 때 초반에 압도적으로 우세하던 공화당 후보들이 막판에  민주당 성향의 부재자 투표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와서 결국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 후보와 두 명의 현직 상원의원 모두 낙마하는 걸 목격하고 그  추세를 막아보자는 꼼수가 아닌가 한다.  이 법의 통과를 지켜보면서 나는 아직도 남부의 보수주의자들은  백년 전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동경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Jim Crow Law란  1880년대에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흑인 노예들을 목화밭에 동원해서 하루 평균 14시간 무급 강제노동을 시켜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남부의 여러주가 실시했던 흑백 분리정책을 말한다. 

그 내용은 첫째 흑인은 백인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할 수 없다, 둘째 화장실에서 물을 마시는 음료대는 백인용과 흑인용으로 구분한다,  셋째 버스에 승차해도 흑인은 맨 뒷자리에 앉아야하고 그 뒷자리마저도 백인이 타면 양보해야 한다, 넷째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도 서로 달랐고 감옥도 달랐으며 심지어 죽어서  묻히는 묘지도 달랐다, 다섯째 공공장소에는 “개와 흑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여져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모든 반인륜적인 범죄가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 기독교를 초석으로 성립한 미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그런데 미국 대법원도 1896년 “플래시 대 퍼커슨 판결”을 통해서 흑인들이 타는 객차와 백인들이 타는 객차를 분리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판결함으로서 차별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1954년 대법원은 그 악법을 뒤집는 판결을 내림으로서 공공 버스나 기차에서 흑백분리정책은 위헌으로 간주되었으나   그 후 “브라운 대 교육부 “ 판결에서 흑인과 백인을 각각 다른 학교에 다니도록 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앞뒤가 안맞는 판결을 내렸다. 

 

마침내 1955년 12월 앨라바마에서 흑인 로사 파크 여사가 일과 후 몹시 지친 몸으로 버스에 탑승해서 무심코 빈 자리에 앉았으나 그걸 본 백인 운전수가 내리라고 명령하자 계속 거부하고 승강이를 벌이다 경찰이 와서 그녀를 강제 연행한 것이 결국 짐크로 법이 폐지되는 촉매제가 되었다. 

다음 날 그 소식을 신문을 통해서 들은 마틴 루터 목사는 목숨을 걸고 전국적인 규모로 인종차별정책 폐지 운동을 몆년간 맹렬하게 주도함으로서 드디어 1964년 민권법이 연방의회에서 통과 됨으로서 짐 크로 법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남부의 보수주의자들의 뇌리에는 그 때의 향수가 마냥 그리운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가서 무슨 기도를 드리는 걸까 참으로 궁금하다. 이제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서 온 인류가 한 식구라는 예수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햇빛을 손으로 가릴 수 는 있지만 태양  자체를 가릴 수 는 없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