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행장을 꾸려본 지가 언제였나싶다. 여행길이 묶이면서 호구지책으로 랜선여행으로 여정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집 할배와 둘만의 스마트 투어로 가이드 받는 느낌 그대로 여러 채널의 여행 프로그램을 섭렵하던 중 ‘세계 테마 기행’ 이란 제하의 여행 전문 교양 프로그램을 택했다. 역사 전공팀의 세심한 검수로 유럽의 랜드마크 취재에 나선 터였다. 영상 여정을 즐기는 동안 감명깊게 와닿는 테마 거리가 있었다. 국경도시 바를러였다. 두 나라 사이 국경이 건물벽에 인접해 이어지기도 하고 상가가 마주하고 있는 도로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마을 길을 관통하듯 지나가고 있었다. 네델란드와 벨기에 국경이 이중으로 놓여있는 집이나 상가들이 출입문을 기준으로 국적이 결정된다고 한다.
두나라 국경이 지나가는 식당의 경우는 문 닫을 시간이 되면 각기 유리한 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만 하면 된다는 재미있는 도시를 만난 것이다. 국경이 주택을 비스듬하게 관통하는 특이한 가옥이 있었는데 현관문엔 집 번호가 둘이었다. 오른쪽엔 19라고 된 번호판 곁엔 네델란드 국기 마크가, 왼쪽 2라고 표기된 번호판 곁엔 벨기에 국기 마크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 집에서 태어난 자녀인데도 국적이 한 아이는 벨기에, 한 아이는 네델란드라 했다. 벽돌을 짜임새 있게 깔아놓은 도로였는데 정방형으로 된 돌판 위에 흰색으로 크로스 표시가 이어져 있는 것이 국경 표시의 전부였다. 행정구획 표시일 뿐 삼엄한 경계표석 같은 뉘앙스와는 거리가 멀다. 국경을 제재없이 길 건너편 마을로 유유자적 오가는 풍경이 낯설고 신비롭다. 별다른 절차없이 왕래하는 관광객이나 국민들의 표정이 밝고 편안해 보인다. 국가와 국가가 이웃처럼 교류하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으면서 부러움이 앞선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엔 이미 상당 부분 장벽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훨씬 견고하고 높게 밀입국을 막기 위한 공사가 2020년 연말까지 진행 예정이다. 애리조나와 멕시코 국경 장벽, 샌디에고와 티후아나 국경 장벽까지 국경 길이가 3천키로를 넘는다. 70여년을 굳건히 한반도를 가로질러 온 38선도, 백두산에서 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도 어마무시한 국경이다. 생존을 위해 험한 국경을 넘어야 하기에 국경은 뼈아픈 그리움들을 묻고 또 묻어둘 수 밖에. 생사를 건 애환을 빤히 보면서도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국경의 아픔이 소롯이 느껴진다. 남북한이 두물머리처럼 하나의 흐름으로 현대사에서 마지막 이데올로기 청산으로 평화로이 국경을 오갈 수 있는 축복의 누림을 과연 누릴 수는 있을까.
대통령 후보 지지자들이 둘로 나뉘어버린 보이지 않은 장벽으로 두 쪽 난 미국이지만 후임 대통령의 건강한 통치에 기대가 된다. 사람 사람 사이의 금긋기가 국민 국민 사이에, 나라 나라 사이에 금 긋기가 된다는 사실을 세상은 외면해왔다. 사람이 모인 곳이면 보이지 않는 금 긋기에 바쁘다. 끼리끼리 문화란 말이 생겨나고 금 밖에 서성이는 사람은 금을 그을 줄 모르기에 왕따란 굴레를 쓰게된다. 참혹한 일이다. 모든 경계는 회복되어야 한다. 지금껏 알고있는 국경은 길이 아니었다. 장벽이 국경이 된 곳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이라 비명 조차 숨을 죽이고, 사람 냄새까지 철수해버린 폐허만 있을 뿐이다. 높은 벽은 탄식을 감추고 기막힌 사연들만 맴돌고 있다.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는 이 땅덩이에서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국경의 통증을 덜어주는 마음들이 모아졌으면 하는 간절함이 사무친다.
이민자의 신분으로 국경을 넘었을 적엔 입국 절차가 전부였다. 고향과의 뒷거둠새를 하는 분기점에서 새롭게 열리는 이국 땅에는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던 국경이었다. 국경은 새로운 만남과 영원한 헤어짐, 또다른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이다. 삽시간 간극 차이로 낯선 꿈을 품으며 어차피 건넜어야 하는 길이라는 체념을 다지게하는 곳이었다.
국경이 공항이라서 부지중에 서성였던 것 같다. 국경은 묘연하게 다가오고 허망함을 안고 떠나기도 하는 곳이다. 국경으로 만나지는 공항은 장소가 아닌 감각적으로 저장된 느낌을 마음이 재생해낸 이미지 같은 것으로 망막 속에 머물러있는 감동 실화같은 곳이었다.
모든 국경에서 긴장없는 부담없는 입국이 이루어질날을 기대해보려 하지만 어찌 마음이 조아려 진다. 나라와 나라의 국경보다 마음의 국경을 먼저 허물었어야 했다. 지역 감정도 국가와 국민 사이에 화합의 경지로 접어들어야함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세상 모든 국경을 마실가듯 드나들 수 있는, 마음의 경계와 국경이 어디인지 오리무중으로 허물어지는 편견없는 세상을 꿈꾸며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하얀 구름들이 아무런 속박없이 유연자적(悠然自適) 국경없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