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쇼핑센터가 개업하던 날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쇼핑객들이 다음날부터 줄어들더니 일주일 후엔 파킹장도 텅텅 비고 차가 별로 없다. 그래도 백화점 Woolco에는 손님들이 있는데 다른 상점들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개업 첫날 우리 상점에 들어와 한국 공예품과 고전가구 등을 돌아보며 뷰티풀 원더풀을 외치며 다음에 물건을 사러 오겠다고 했던 손님들은 전혀 소식조차 없다.
미국 손님들의 취향과 또 칭찬을 잘하는 문화와 습관을 잘 모르고 어리석게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선전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장사가 잘될 것 이라고 믿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장사가 안돼 적자를 면할 길이 없게 됐다.
다행히 다운타운 가발상회가 장사가 잘돼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으나 잘못 선택한 사업 때문에 생고생을 하게 됐다. 쇼핑센터 상점 임대계약 기간까지는 문을 닫을 수도 이사를 할 수도 없다. 무모한 욕심과 꿈 때문에 생긴 결과다. 임대 계약이 끝난 후에도 남은 재고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큰 고민거리다.
일요일엔 상점을 닫기 때문에 머리도 식힐 겸 휴스턴에 가 한국 음식도 사 먹고 식료품도 사 가지고 왔다. 텍사스 휴스턴에는 한국 사람들과 한국 식당, 식품점, 신문사, 교회도 많고 한국 총영사관도 있어 편리한 점이 많은데 우연히 그 곳에서 한국에서 문화영화 제작을 했던 ‘전세권’ 사장을 만나 옛정을 나누며 추억을 아로새기고 자주 휴스턴을 오가며 사업은 대도시에서 해야만 승부가 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새로 개업한 쇼핑센터 임대계약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장사가 잘되는 가발상에서는 시간이 빨리 가 지루한 것을 몰랐는데 장사가 안 되는 새 가게는 시간이 안 가고 지루하기 이를데가 없다.
하루종일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처량한 신세라 할 수 없이 책을 펴들고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억지 자위를 해야만 했다.
지루한 하루가 지나면 다운타운에서 장사를 하느라 고생한 아내가 차려준 저녁상을 감사하게 먹곤 했다.
저녁 식사 중 막내 딸 민정이가 토요일 다운타운에서 걸 스카우트 퍼레이드가 있는데 자기도 참가한다면서 시간은 아침 10시라고 했다. 토요일 아침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몰리고 경찰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나타난 뒤에는 퍼레이드에 참가한 차들이 줄을 이었는데 첫번째 오픈카에 타고 있는 민정이가 손을 흔들며 우리 상점 앞을 지나게 됐다.
우리는 감개가 넘쳐 신나게 손을 흔들고 퍼레이드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꿈만 같은 현실이다. 처음 이민왔을 때 미국에는 친구도 없고 말도 못해 싫다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울며 불며 떼를 쓰던 막내가 미국 학생들을 제치고 퀸으로 뽑혀 오픈카를 타고 행진을 하다니 어찌 기쁨과 감격이 넘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그 순간 이민을 잘 선택했다고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