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제작된 한국영화‘기생충’이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뒤 미국 문화계에 한국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영화와 K팝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영화, 드라마,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계 창작자들이 재능을 펼치며 한국 관련 콘텐츠를 미국 사회에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계 제작자 메리 리, K팝 팬 소재 영화 제작중

이민진 작가 소설‘파친코’애플TV플러스서 드라마로

그레이시 김, 한국 신화 입힌 소설 디즈니채널 검토

 

■한인 제작자들 K콘텐츠 르네상스 이끈다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미나리’는 이민 2세대인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여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었지만,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의 책임 프로듀서였던 한인 2세 프로듀서 크리스티나 오가 적극적으로 제작을 추진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그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내게 오는 여러 이민자 이야기, 아시아계 미국인 이야기, 아시아인 이야기를 읽어봤지만 ‘미나리’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었다”며 “아주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한국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작품이 늘어나는 건 이처럼 한인 2세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곳곳에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제작자인 메리 리 A메이저 대표는 한국계 배우 존 조 등과 함께 K팝 팬을 소재로 한 코미디를 비롯해 한국 관련 소재를 다룬 영화를 여러 편 준비하고 있다. 

메리 리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재능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들이 많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는 자리에도 아시아계 미국인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CBS 인기 시트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에 다양한 한국적 소재를 넣어 관심을 모았던 한인 3세 제작자 코트니 강은 자신의 고교시절 경험을 토대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소설‘파친코’를 쓴 재미 한인 작가 이민진. <문학사상 제공>
소설‘파친코’를 쓴 재미 한인 작가 이민진. <문학사상 제공>

 

 

 

 

 

 

 

 

 

 

 

 

 

 

 

 

 

 

 

 

 

■한인 작가들 미 문단서 맹활약

한국계 작가들은 한국의 문화나 역사, 한국계 미국인을 소재로 한 소설을 잇달아 펴내며 ‘K콘텐츠’에 목마른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는 재미 한인 1.5세인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간 조선인 가족의 험난한 삶을 4대에 걸쳐 그리는 작품으로 ‘미나리’의 윤여정과 한류스타 이민호 등이 출연한다.

A메이저는 한인 3세 모린 구의 로맨스 소설 ‘아이 빌리브 인 어 싱 콜드 러브’의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이용해 짝사랑하는 소년의 마음을 뺏으려 하는 한국계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또 디즈니채널은 뉴질랜드 외교관으로 근무 중인 한인 1.5세 작가 그레이시 김이 미국에서 5월 출간 예정인 판타지 소설 ‘마지막 떨어진 별’의 드라마 제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A를 배경으로 도깨비, 천리마, 해태, 인면조 등 한국 신화를 현대인의 시각에 맞춰 재해석한 판타지 소설이고 입양 한인이 주인공이다.

미국 문단에선 한국계 작가들이 ‘여러 아시아인 중 하나’가 아닌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리며 활약하고 있다. 이창래, 수전 최 등 유명 재미한인 작가들에 이어 ‘유어 하우스 윌 페이’로 지난해 LA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한 스테프 차, ‘킨십 오브 시크리츠’의 유지니아 김, ‘더 프린스 오브 몬풀 소츠 앤드 아더 스토리스’의 캐롤라인 김 등은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로 최근 주목 받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K팝 등 인기에 ‘K콘텐츠’ 제작 쏟아져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인 이민 가정의 삶을 다룬 영화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제작돼 왔다. 그러나 김소영 감독의 ‘방황의 날들’(2006)을 비롯해 마이클 강 감독의 ‘웨스트 32번가’(2007), 대니얼 박 감독의 ‘K타운 카우보이스’(2015), 앤드류 안 감독의 ‘스파 나이트’(2016) 등 대부분 독립영화에 한정돼 폭넓은 대중과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TV와 OTT로 확장하며 대중과 접점을 크게 넓히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인스 최는 자신이 만든 연극을 토대로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시트콤 시리즈 ‘김씨네 편의점’을 제작했다. 5년째 방송 중인 이 시리즈는 토론토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018)도 큰 인기를 모으며 두 편의 속편을 낳았다. 한국계 미국인 소녀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 속에 한국 명절 풍습과 한복 등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까지 큰 성공을 거두자 미국 내 ‘K콘텐츠’ 제작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위시한 K팝에 대한 높은 관심과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같은 장르물의 인기는 이 같은 변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 관련 콘텐츠는 아니지만 3년 전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흥행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앤드류 안 감독은 최근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기생충 이후 ‘K팝 프로젝트 갖고 있는 것 없냐’고 물어보는 제작자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김소영 감독도 같은 인터뷰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 관련 프로젝트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계 창작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결정적 계기는 영화 ‘기생충’의 성공이다. 정이삭 감독은 “‘기생충’이 흥행에 성공한 덕에 한국어 대사는 더 이상 영화 제작에 있어서 장벽이 되지 않는다”면서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한국계 미국인 창작자들이 이전보다 더 큰 자유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영화‘미나리’의 스틸 컷.       <판씨네마 제공>
영화‘미나리’의 스틸 컷. <판씨네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