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가정부담금’(The Expected Family Contribution, EFC)?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 할 부모들이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용어-은 좋았던 시절에도 별로 타당해보이지 않았다. 이제 마침내 이 어휘는 없어졌다. 지난 달 트럼프의 서명으로 법안으로 확정된 5,000페이지에 달하는 구호법안에 담긴 명령과 준칙들 가운데는 연방고등교육법의 3개 단어를‘학생 지원 인텍스’(student aid index)로 바꾸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매년 1,900만 명의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EFC와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연방 그랜트와 대출, 그리고 일부 일자리 자격을 얻기 위해 매년 반복해 작성해야 하는 연방 학생 재정지원 신청서인 FAFSA의 일련의 질문들에 답을 한 후 보게 되는 액수이다.

 

‘기대 가정부담금’액수 나타내는 항목

 새 연방법 따라 2022~2023년도부터 폐기

“부모들에게 불필요한 부담감 안겨줘”

‘학생 지원 인덱스’라는 새 용어로 대체

 

이것은 사라지게 돼 속이 시원한 항목이다. 신청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소득과 신청 가구의 일부 자산을 사용한 연방 공식에 따른 산정 액수인 EFC에 의해 당황스러움을 느껴왔다. 

예를 들어 부모 자신들의 학자금 대출은 설명하고 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액수가 클 경우 1년이 아닌 4년 동안 부담해야 할 액수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단어들 자체도 문제가 있다. 마치 요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단어들이 함축하고 있는 판단들, 이것이 의도했지만 명시적이지는 않았던 것들, 그리고 너무 많은 가정들과 이들에게 자문을 해주는 전문가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줬던 시스템 속에 스며든 완곡한 표현 등 이 모든 것들과 이제는 결별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인덱스를 결정하는 기본 공식은 일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저소득층을 위한 연방 펠 그랜트를 받게 되거나 최대 액수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일부 고소득층 부모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새로운 인덱스에 따라 EFC보다 더 많은 부담금 액수가 나올 수도 있다.(물론 여전히 이들의 자녀들은 이들을 간절히 원하는 많은 학교들로부터 새로운 인덱스가 산정한 액수보다 더 많은 지원을 제시받거나 형편과는 상관없는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2022~2023년도부터 EFC라는 너무 싫은 단어들이 우리 삶에서 추방시키게 된 것을 축하하자. 그리고 이것이 부모들에게 안겨줬던 정서적 고통 역시 그렇다.

EFC는 최소한 1992년 고등교육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다. 이 단어를 만들어내 사람은 좀 더 나은 고등학교 영어교육을 받았어야 했다. ‘기대되는’(expected)이라는 단어는 수동형으로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 수년 전 나는 워싱턴에 가 교육부와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연방 지원 산정 공식은 독자적으로 일하는 차관들이 아닌, 법령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치가 있다. 여기서 기대하고 있는 주체는 연방정부이다. 이런 요구는 정신적 부담을 안겨준다고 경제인류학자로 뉴욕대학 교수인 케이틀린 잘룸은 지적한다. 잘룸 교수는 가정들이 감당하는 대학학비 부담 문제에 관한 책을 썼다. 그는 “EFC같은 정책들은 단순히 부담해야 할 액수가 아니라, 가정들에 대한 지침들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정부가 엄마 아빠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관해 보내는 도덕적인 메시지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말로 하면 아이들은 교육이 필요하다. 정부는 부모들이 그것의 비용을 감당해 주길 기대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당신은 그들의 삶에서의 성공을 저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 역시 기대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정부는 부모들이 학비부담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그럴 능력이 없거나 의사가 없을 경우 자녀들은 자신들의 부모에 대해 분개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면 부모는 죄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돈을 약간 혹은 아주 많이 대출받는다.

대학들도 기대를 갖고 있다. 이들은 E.F.C를 살핀 후 더 많은 정보들을 원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다른 양식을 작성한다. 그리고는 당신의 부담 능력에 대한 더 많은 판단이 나오게 된다.

템플대학의 사회학 및 의대 교수인 사라 골드릭은 “대학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골드릭 교수는 “당신은 관계의 아주 초기단계에서 이 단어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은 당신을 정말 잘 알지는 못한다. 이것은 신뢰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뒤따른다. 기대 부담금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시튼홀 대학의 고등교육 교수인 로버트 켈첸은 “대학은 종종 학생들에게 E.F.C보다 더 많은 돈을 낼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EFC의 ‘가족’은 통상적으로 부모들을 뜻한다. 학생들이 돈을 벌면서 적정 기간 안에 대학과정을 마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EFC는 아이가 스스로 노력해서 해야 한다고 믿는 부모 혹은 부모들의 가정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

부모들이 고등교육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의심쩍어하면서 도와주지 않겠다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EFC는 대가족이나 나이든 부모와 친척 형제 등을 보살필 의무가 있는 경우에도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

뉴욕대학 잘룸 교수는 “가정부담금이 고통을 안겨주는 페이먼트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잘룸 교수는 “그것은 자발적인, 쉽게 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이 단어는 가정들에게 안겨주는 부담을 잘못 여기게끔 만든다”고 지적했다.

‘학생 지원 인덱스’ 같은 보다 더 중립적인 문구는 우리가 대학교육을 위해 낼 수 있고 내야만 할(그리고 대출받고 희생해야 할) 페이먼트를 둘러싼 감정적 지뢰를 제거해 줄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연방 재정지원 시스템은 정체된 소득과 불평등 혹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어 하는 대학 주거경험에 들어가는 많은 비용을 해결해 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나은 단어를 사용할 수는 있다. 언어가 문제인 것이다. 자신들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는 부모들에게 수치와 비난을 안겨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EFC를 매장하기로 했다. 흙속에 파묻어 퇴비가 되게 하라. 그래서 자녀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을 놓고 한결 더 부드러운 대화가 오고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By Ron Lieber>

<삽화: Robert Neubecker/뉴욕타임스>
<삽화: Robert Neubecker/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