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마음 졸이며 일만 하다가 9월을 맞았다. 올 여름에도 콩국물 신세를 많이 졌다. 국물이야 마트에서 사면 끝이니 소면을 삶고 오이든 토마토든 가지고 있는 채소를 적당히 올린다. 그렇게 금세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데, 특히 많이 먹으면 부담스러운 점심에 좋다. 국물을 직접 낸다면 모를까, 평범하기 그지 없는 콩국수이지만 그래도 나만의 비밀 재료가 하나 있다. 바로 올리브이다. 적당히 다져 고명으로 얹으면 풍성함을 뚫고 올라오는 짭짤함이 기본 간이 대체로 약한 콩국수의 텁텁함을 덜어준다.

그걸로 모자라다 싶으면 올리브가 담긴 소금물을 한두 작은술 더해도 좋다. 콩국물이 걸쭉하고 차가운 탓에 소금이 아주 잘 녹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래저래 신의 한 수 같다는 생각을 먹을 때마다 나 혼자 한다.

더군다나 올리브는 오이 및 토마토와도 두루 잘 어울리니 고명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는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칼질조차 하기 귀찮고 간편함의 미덕을 최대한 살리고 싶다면 올리브 몇 개와 국물을 숟가락으로 대강 떠 담으면 된다. 오이든 토마토든 채소는 통째로 먹는다.

짭짤한 반찬이 필요한데 김치는 딱히 내키지 않을 때 올리브로 손을 뻗는다. 예전엔, 특히 여름엔 이 자리는 오이지의 몫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잘 만든 오이지는 찾기 어려워지는 반면 올리브의 접근성이 차츰 높아지면서 본의 아닌 선수교체(?)가 일어났다.

둘이 정확하게 대체 가능한 음식이 아니므로 굳이 ‘본의가 아니라’고 토를 달았다. 절임 음식으로서 모든 느끼함과 텁텁함을 시원하게 갈라줄 만큼의 짠맛을 품었다는 공통점을 가졌을 뿐, 오이지는 오이지이고 올리브는 올리브이다.

시칠리아가 원산지인 카스텔베트라노는 풍성하고 순한 맛이 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시칠리아가 원산지인 카스텔베트라노는 풍성하고 순한 맛이 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김치, 장아찌처럼 절임 음식 올리브

하지만 오이지와 올리브가 은근슬쩍 대체재로 엮일 수 있는 데는 현실에도 책임이 있다. 다들 짜게 먹는다고 난리치는 가운데서도 단맛의 방해 없이 짠맛이 제 목소리를 내는 음식이 별로 없다. 김치는 이미 오래 전에 짠맛이나 신맛보다 고춧가루의 매운맛이나 단맛에 기댄다. 장아찌류는 대체로 달다.

올리브도 결국 절임 음식임을 감안한다면 마음 먹기에 따라 지금보다 얼마든 더 가깝게 두고 요긴하게 쓸 수 있다. 국내 생산이 안 되기는 하지만 올리브는 엄청나게 보편적인 식재료이기도 하다. 기름을 일컫는 영단어 ‘오일(oil)’이 사실 ‘올리브 기름(라틴어 ŏlĕ um)’에서 왔으니, 모든 기름과 그 원재료 이전에 올리브가 존재했다.

올리브의 서슴없는 짠맛은 사실 궁여지책의 산물이다. 가공을 거치지 않은 열매는 써서 먹기가 어렵다. 녹색이었다가 익으면서 검정색으로 변하고 맛도 좀 더 부드러워지기는 하지만 쓴맛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결국 많은 양의 소금과 소금물로 몇 개월 동안 염지 및 발효를 시킨 뒤에야 올리브는 먹을 수 있는, 아니 맛있는 식재료로 탈바꿈해 깡통이나 병에 담겨 팔린다.

물론 시간이 돈인 현실에서 식품 공학이 팔짱을 끼고 방관할 리가 없다. 가성소다, 혹은 좀 더 적나라한 이름인 양잿물로 올리브를 처리하면 과육에 미세한 구멍이 나면서 소금물의 침투와 쓴맛의 추출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다만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지라, 공업 가공은 시간을 줄이는 대신 맛도 더 많이 뽑아낸다. 그래서 올리브의 고소함이나 향이 아무래도 약하다.

 

■올리브 고르는 법

보편적이고도 다양해서 올리브 골라 먹기도 자칫 잘못하면 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서양 슈퍼마켓의 ‘올리브 바’에 가면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린다. 생김새도 색깔도 다른 올리브가 열 종류를 넘어가면 뭘 골라 먹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워진다.

일단 품종에 상관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요령 두 가지로 멍석을 깔아보자. 첫째, 병조림 등 통조림 외의 제품에 우선권을 준다. 통조림이라고 덮어놓고 품질이 낮은 건 아니고 병조림 가운데도 썩 맛있지 않는 제품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만 놓고 보자면 둘의 출발점은 다르고 병조림의 수준이 좀 더 높다. 게다가 병에 담긴 채로 필요한 만큼 꺼내 쓸 수 있으니 통조림보다 편하다.

둘째, 씨를 발라낸 것과 아닌 것을 필요에 따라 고른다. 씨를 발라낸 제품이 쓰기 편해 장땡일 것 같지만 비교해 맛을 보면 질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아무래도 씨를 발라내지 않은 과육이 훨씬 더 아삭하고 생생하니, 맛을 위해 귀찮음은 감수할 수 있다면 후자를 권한다. 요리에 쓸 때는 마늘 다지기와 같은 요령으로 도마에 올려 칼등으로 지긋이 눌러 준다. 씨만 쏙 빠져 나올 것이다.

다음으로는 국내에 주로 유통되는 올리브 몇 종류의 특징을 살펴보자. 고르고 먹는 대세에는 지장이 없지만, 포장에 붙어 나오는 이름이 언제나 올리브의 품종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와인이나 치즈를 포함한 유럽발 농산품 혹은 음식이 대체로 그렇듯, 품종보다 법으로 보호 받는 생산지의 명칭 등을 더 흔히 쓴다.

 

1. 카스텔베트라노

카스텔베트라노는 원산지인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지역이고, 품종의 이름은 노체렐라 델 벨리체(nocerella del belice)이다. 청록에 가까운 생생한 녹색이 인상적인 카스텔베트라노는 풍성하면서도 부드러운 과육에 맛은 순한 편이라 그냥 먹기에 좋다. 피자의 고명이나 통조림 너머의 올리브와 친해지고 싶다면 가장 먼저 권한다. 지금과 같은 여름의 끝자락에 상큼한 화이트 와인, 부슬부슬하고 풀냄새 그윽한 염소 혹은 양젖 치즈와 잘 어울린다. 검정 카스텔베트라노도 유통된다.

2. 체리놀라

이탈리아 풀리아 주의 체리놀라 지방에서 나오는 이 올리브는 국방색 또는 탁한 황갈색을 띤다. 면바지나 군복의 ‘올리브색’이 바로 체리놀라의 색이다. 올리브 가운데서도 큰 편인데다가 아삭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맛을 지니고 있다. 이 계절이라면 체다 같은 치즈와 함께 시원한 라거 안주로 좋다.

3. 칼라마타

그리스의 동명 지역이 고향인 칼라마타는 녹색이었을 때 수확하지 않는다. 다 익어도 검정 올리브로 구분은 되지만 진한 자주색을 띤다. 많은 경우 레드와인이나 레드와인 식초에 담근 상태로 팔린다. 프랑스의 니수아즈와 더불어 프로방스의 전통 음식인 타페나드(tapenade)의 재료로 흔히 쓰인다.

4. 만자니야

1. 스페인산이다, 2. 씨를 발라내고 속에 파프리카를 채웠다. 시중에 유통되는 만자니야 올리브의 특징이다. 속이 채워져 있지 않은 만자니야라면 마늘과 함께 적당히 으깨어 접시에 담아 올리브기름을 졸졸 끼얹어 낸다.

5. 미션

통조림 가공된 미국 캘리포니아산 올리브라면 별 예외 없이 미션일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별도의 가공 과정을 거쳐 녹색 올리브를 검정색으로 숙성시켜 출시한다. 양잿물과 더불어 산화 처리를 통해 통상 6~8주 걸리는 올리브의 가공을 24시간으로 단축시키는 한편, 발색제인 글루콘산철로 검정색을 살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익은(ripe)” 캘리포니아 올리브가 만들어진다. 요즘은 좀 더 자연스러운 가공을 강조하느라 발색제를 뺀, 진한 회색에 가까운 제품도 있다.

 

■올리브 활용 요리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식품이라고 했듯 딱히 안 어울리는 맥락을 찾기가 더 어려운 게 올리브이다. 그런 가운데 한식까지 지평을 넓혀 잠재력을 헤아려 보면 안초비와 더불어 맛의 ‘원투펀치’로 쓰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둘 다 두드러지는 짠맛에 감칠맛까지 지니고 있어 많은 음식을 밍밍함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가운데, 나물에 특히 유효하다. 올리브와 안초비로 고사리 나물을 볶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한편 올리브를 쓰면서 다른 재료도 겹치는 간단한 대표 요리 레시피 두 가지를 소개하니 참고하자.

 

-타페나드

❶검정 올리브 (칼라마타, 니수와즈 등) 250g

❷안초비 2쪽, 소금기를 헹궈낸다

❸마늘 1쪽, 다진다

❹케이퍼 2큰술

❺생바질잎 2~3장

❻레몬즙 1큰술

➐올리브기름 2큰술

올리브를 찬물에 말끔히 씻는다. 모든 재료를 손 블렌더(도깨비방망이)의 양념갈이통이나 절구에 담는다. 입자가 적당히 굵은 페이스트가 될 때까지 1~2분(손 블렌더), 3~4분(절구) 갈거나 다진다. 스패출러로 그릇에 옮겨 담고 랩을 씌워 맛이 어우러지도록 18시간 이상 두었다가 빵에 발라 먹는다.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에서 짭조름한 감칠맛을 더해주는 올리브는 한식의 김치나 장아찌처럼 다양한 요리와 두루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에서 짭조름한 감칠맛을 더해주는 올리브는 한식의 김치나 장아찌처럼 다양한 요리와 두루 잘 어울린다.

 

-안초비 올리브 파스타 

(*실버스푼 클래식 (세미콜론)에서 발췌 인용)

4인분 기준 / 준비: 10분 / 조리: 15분

❶안초비 100g,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건져 놓는다

❷올리브기름 4큰술

❸마늘 2쪽, 껍질 벗긴다

❹케이퍼 50g, 건져낸다

❺검정 올리브 100g, 씨를 발라내고 썬다

❻스파게티 350g

❼다진 생파슬리 이파리, 고명, 소금

프라이팬이나 스킬렛(무쇠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에 올려 달군다. 마늘을 올려 약불에서 노릇해질 때까지 종종 뒤적이며 익힌다. 구멍 뚫린 국자로 마늘을 건져내 버린다. 케이퍼와 올리브를 팬에 더해 종종 뒤적이며 5분 더 익힌다. 안초비를 더해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나무 숟가락으로 으깨며 익힌다.

소스를 만드는 사이 면을 삶는다. 소금물을 넉넉히 끓여 면을 넣고 가운데의 심이 살짝 씹힐 정도(알덴테)로 익힌다. 삶은 물을 쏟아 버리고 면을 소스가 담긴 팬이나 스킬렛에 더해 잘 버무린다. 파슬리를 솔솔 뿌려 바로 낸다.

 

 

절인 올리브는 다양한 치즈와 채소와도 잘 어울린다.
절인 올리브는 다양한 치즈와 채소와도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