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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옥폭포 물비늘 시리게 반짝이는… 김홍도가 사랑한 그곳

지역뉴스 | 기획·특집 | 2020-08-07 09:09:18

문경,충주,괴산연풍면,여행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이름만 들으면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살랑대는 바람에 가슴까지 설렐 것 같다. 아쉽게도 연풍(延豊)은 그런 낭만적인 이름이 아니다.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자면 ‘풍년이 이어지는 곳’쯤 된다. 문경에서 조령산(1,025m)을 넘으면 괴산 연풍이다. 이곳에서 다시 소조령 고개를 넘으면 충주 수안보다. 1,000m 안팎의 산으로 둘러 싸인 지형이니 들은 옹색할 수밖에 없다. 연풍이라는 지명은 먹을 것이라도 풍족했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옥폭포 물비늘 시리게 반짝이는… 김홍도가 사랑한 그곳
수옥폭포는 연풍을 대표하는 자연 경관이다. 조령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20m 높이의 암벽에서 떨어져 주변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킨다.

 

■김홍도 현감이 사랑한 연풍

연풍은 첩첩산중 괴산에서도 한갓진 동네지만, 한때는 독립된 현(縣)으로 자존심을 지키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연풍현감에 제수되면 두 번 운다는 말이 있었다. 궁벽하고 이름 없는 고을의 수령으로 발령받은 것 자체가 임금의 눈 밖에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운의 꿈을 품은 야심가라면 더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러나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되돌아갈 때는 다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인심 좋고 경치 좋은 이곳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서다. 작은 고을인 만큼 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큰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터, 정치적 욕심이 없다면 최적의 근무지다.

연풍현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 단원 김홍도(1745~?)가 있다. 1791년 정조의 어진을 그린 공로를 인정받아 연풍현감에 임명된 후 1795년까지 봉직했다. 수옥정을 그린 ‘모정풍류(茅亭風流)’, 꿩 사냥을 그린 ‘호귀응렵도(豪貴鷹獵圖)’ 등은 당시 연풍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조령산 상원사의 빛 바랜 탱화를 보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무엇보다 48세에 득남을 한 곳이어서 연풍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늦둥이로 얻은 아들 김양수는 연풍과의 인연을 강조해 ‘연록’이라고도 불렀다.

연풍초등학교 교정에 연풍동헌이 남아 있다. 영조 42년(1766) 처음 지은 건물로 ‘풍락헌(豊樂軒)’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넓은 운동장에 기와집 한 채만 남아 다소 맨송맨송한데, 수령 30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허전함을 메우고 있다. 세월의 이력처럼 울퉁불퉁한 몸통에서 휘어진 가지가 운동장으로 멋들어지게 휘어져 있다.

부속 기관이라 할 연풍향청은 학교 바로 옆 천주교 연풍성지 안에 있다. 향청은 지방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기구으로 풍속을 바로잡고 향리를 감찰하는 기관이다. 숙종17년(1691)에 지은 연풍향청 건물은 1910년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후 헌병대와 주재소로 사용됐다.

광복 후에도 연풍지소로 쓰였는데, 1963년 천주교에서 사들여 현재 연풍공소로 이용하고 있다. 2개 온돌방을 갖춘 단아한 한옥건물 마루에 설교할 때 사용하는 강단과 포교 장면을 담은 그림이 놓인 모습이 낯설게 보인다. 앞마당엔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이 앉을 긴 의자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천주교 박해를 주도했을 향청이 성당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연풍은 천주교가 전파된 초기부터 교인들이 은거해 오던 곳이었다. 신해박해, 신유박해 때 연풍으로 숨어든 많은 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됐다. 당시 사용한 돌 형구가 성지 입구와 십자가의 길에 놓여 있다. 성지의 가장 상징적 인물은 황석두(세례명 루카)다. 연풍 병방골(현 장연면)이 고향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해 한국천주교 103성인에 오른 인물이다. 보령 갈매못에서 숨진 그의 유골은 여러 곳을 거쳐 1982년 이곳에 안치됐다.

연풍 성지는 면소재지 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무가 많고 연못과 잔디밭이 깔끔하게 조성돼 있어 교인이 아니라도 조용하게 사색하기 좋은 곳이다. 조선시대 공립 교육기관이자 지역 규율의 구심점이었던 연풍향교도 인근에 있다.

 

수옥폭포 물비늘 시리게 반짝이는… 김홍도가 사랑한 그곳
연풍초등학교 교정의 느티나무가 운동장으로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연풍동헌과 나이가 비슷하다.
수옥폭포 물비늘 시리게 반짝이는… 김홍도가 사랑한 그곳
연풍면 소재지의 연풍향교. 1970년대에 복원한 건물로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던 연풍의 자존심이 서린 유적이다.

 

■조령관문에서 과거길 걸어 수옥폭포까지

문경에서 조령 제3관문(공식 명칭은 ‘조령관’이다)을 넘으면 연풍 땅이다. 백두대간 조령산 마루를 넘는 이 재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예부터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중요한 통로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특히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영남의 유생들이 많이 이용했던 길로 알려져 있다.

새도 한번에 넘기 힘든 고갯길, 조령(鳥嶺)이 ‘문경새재’로 널리 알려진 게 괴산으로선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조령관 앞에 생소하게도 커다랗게 ‘연풍새재비’를 세워 놓았다. 괴나리봇짐에 미투리를 단 동자 석상부터 옛 과거길이 이어진다.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조붓한 오솔길이다. 힘든 발걸음 잠시 쉬어갈 넓적한 바위 뒤에는 ‘장원급제’ ‘금의환향’이라 쓴 장승도 세웠다.

일대는 현재 조령산자연휴양림에 포함된다. 과거길은 관리용으로 닦은 넓은 도로와 연결되고, 그 길이 휴양림 입구까지 이어진다. 최근 시멘트 포장을 모두 걷어내고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흙길로 조성해 맨발로 걸어도 좋다. 상수리를 비롯한 키 큰 낙엽활엽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어느 구간 할 것 없이 그늘이 짙다. 신선봉, 마패봉 등 조령산 줄기의 높은 봉우리로 가는 등산로도 이 길에서 연결된다. 휴양림 초입에는 솔숲이 울창하다. 하늘 높이 쭉쭉 뻗는 소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도 과거길 못지않게 운치 있다.

휴양림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연풍의 최고 경관으로 치는 수옥폭포를 만난다. 나뭇잎에 가려진 널찍한 암벽 가운데로 20m 높이의 폭포가 떨어진다. 부서지는 물방울이 바람이 되어 날린다. 녹음에 지친 나뭇잎이 흔들린다. 그 산들바람에 잠시 무더위를 식힌다. 폭포가 잘 보이는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조선 숙종 37년(1711) 연풍현감으로 있던 조유수가 삼촌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수옥정(漱玉亭)의 ‘수’자가 아주 낯설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양치질하다’ ‘씻다’ 등의 의미가 있다. 옥을 씻은 물이니 수옥(水玉)과 뜻은 매한가지인데, 억지로 어려운 한자를 고른 듯하다. 조금은 허세가 풍기는 작명이다.

수옥폭포는 연풍에서 수안보로 가는 도로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뛰어나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발을 담그라고 선뜻 권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폭포 바로 위에 대형 물놀이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수옥폭포 바로 아래 도로변에는 불상 두 개가 나란히 조각된 커다란 바위가 있다. 공식 명칭은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이다. 보기 드문 형식이어서 보물 제97호로 지정돼 있다. 안내문에는 ‘얼굴 전반에 미소가 번져 완강하면서도 자비로운 느낌을 준다’고 했는데, 얼핏 보면 코와 입 주변이 훼손된 게 거슬린다. 한국전쟁 당시 총에 맞은 자국이다. 

마애불에서 조금 내려가면 내년 개통 예정으로 중부내륙철도 연풍역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에는 직행버스정류장 건물이 옛 추억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때 서울에서 문경 상주 안동 등 경북 북부지역을 오가던 시외버스가 쉬어가던 곳이다. 텅 빈 정류장을 둘러보는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무더위를 누그러뜨린다. 연풍(軟風)이다.

<괴산=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수옥폭포 물비늘 시리게 반짝이는… 김홍도가 사랑한 그곳
조령관 부근에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 석상을 세워 놓았다. 이곳부터 짧은 구간에 옛 과거길이 남아 있다.
수옥폭포 물비늘 시리게 반짝이는… 김홍도가 사랑한 그곳
연풍면 소재지 전경. 오른쪽 구름에 덮인 산줄기가 조령산 능선이다. 천주교 연풍성지(사진 하단 중앙)가 면소재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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