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서)

바그다드를 안정시키라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안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잊었으며 기억한다 해도 그것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 정치의 이상화된 비전일 뿐이다. 정부도 미군도 기본적 행정 서비스 또는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이 민병대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정치적 화해의 불확실성보다는 보복이 항상 우선하게 된다.

미 군사령관들은 바그다드의 거리 회수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라 믿어지는 일련의 캠페인을 가동하였다. 군사 전략 중 하나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반란군을 “진압”하고, 이웃 지역은 “보존”하면서 사회 간접 자본을 조속히 재건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계획만이 효과가 있는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바그다드의 군사령관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미국 및 이라크 군의 극히 일부만을 공급받았다는 것이다.

장군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이라크를 자신의 자랑스러운 군사 이론의 증명 무대로 사용하려는 럼스펠트 장관의 태만한 결정의 결과로 부대가 충분히 공급되어 본 적이 없다. 육군 및 해군은 이미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있기 때문에 바그다드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힘을 북돋워주려면 이라크 내 타 지역의 수천 명의 미군들을 이동시켜야 한다. 이것은 수니파 주도의 서쪽 지역에서 인력을 빼내야 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안바(Anbar, 이라크 서부도시, 편집자 주)와 같은 장소에서는 더 많은 폭력이 자행될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인들에게는 안보 및 재건이 가능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 바그다드가 혼돈 상태에 있는 한 이라크인들은 분파적 반란군과 편협한 공의 외에는 의존할 곳이 없게 된다. 워싱턴이 바그다드를 안정시키기 위해 믿음직스러운 노력을 기울이면, 이라크 정치인들은 화해 회담에 나타나도록 더 자극을 받을 것이다. 조수가 방향을 튼다는 것을 알게 되면 거부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접국을 참여시키라

이라크 인근에 위치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은 미국이 전쟁에 잘못 대처해도 한참 잘못 대처하는 것에 대해 격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피를 흘리기를 몹시 바라는 이란과 시리아조차도 이라크가 전면적 내란에 빠져서 난민들을 국경으로 내몰면 손해가 막심하다. 이 이기적 심리를 이용하여, 이라크의 인접국들이 그들의 이라크내 고객들이 벼랑 끝에서 한 걸음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하도록 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이라크의 몰락으로 자국의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및 오일이 풍부한 인접국들은 직업 프로그램 및 재건에 소용되는 재정 부담에 동의하도록 압력을 받아야 한다.

개명된 이기주의는 사실 중동에서 보기 힘든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진정한 도움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다마스쿠스와 테헤란과 이라크 문제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에 대해 대화를 하고 중동 평화의 진정한 중개자가 될 진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이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전략 중 가장 쉬운 부분일 것이다. 다른 나라와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을 대단한 양보를 하는 것처럼 여기는 백악관이 문제이다.



현실을 인정하라

지금까지 설명한 전략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재난을 피하기 위한 모든 계획은 구원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행정부의 극심한 비평론자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이제 남아있는 의견이 거의 없다는 것과 어떤 행동이 더 취해지지 않으면 미군 철수 후의 틀림없이 오게 될 아수라장에 대한 괴로운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치 않는다.

진실은 우리를 여기까지만 안내하겠지만 이것이 시작하는 옳은 방법이다. 미국인들은 유능한 정부 아래서였다면 이라크 침공이 더 잘 풀렸을까에 대해 다음 세대 내내 논쟁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투표소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외교 정책 사태가 될 수도 있는 것에 대해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계획은 아니다.

이라크의 임박한 장래에 대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풍부치 않으며 모양새도 좋지 못하다. 하지만 여전히 추구해 볼 해결책들이 있으며-대안들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에-다시 한 번 해 볼 가치가 있다. 모두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성공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박세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