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친러 발언 거센 후폭풍에

 “통역 나와 증언하라” 의회서 촉구


 “직업윤리 위반” 통역들 강력 반발

트럼프가 허용 안하면 가능성 희박



그녀는 무엇을 들었을까.

지난 월요일 헬싱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두 사람만의 밀담이 진행된 ‘그 방’에 함께 있던 유일한 미국인, 통역관 마리나 

그로스가 정치 파문에 휩쓸리고 있다.

국무부 소속으로 러시아어에 유창하고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2008년 러시아 소치에서 로라 부시 당시 퍼스트레이디의 통역과 

2017년 모스크바에서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의 통역을 맡았다는 것이 그녀에 

관해 공개적으로 알려진 전부다.

그런데 헬싱키 회담의 후폭풍이 점점 

거세지면서 트럼프와 푸틴의 대화를 직접 

들은 그녀가 진실 규명의 증언 가능자로서 전혀 의도치 않은 스포트라이트 속에 

던져진 것이다. 




도대체 두 사람의 독대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매일 말을 바꾸는 트럼프의 변덕에 미 정계의 논란이 증폭되자 그녀에게 청문회에 출두해 들은 것을 증언하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동료 통역관들은 통역 내용에 대한 비밀유지를 규정한 직업윤리를 강조하며 이 같은 요구에 분노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원들은 그녀가 통역 중 메모를 한 노트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경험 많은 정부 통역관들은 말한다. 자신만 알 수 있는 부호와 단어를 불규칙하게 표시한 속기여서 다른 사람들에겐 해독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그 내용을 말한다면 그것은 변호사와 고객사이의 비밀유지나 고해성사에 대한 신부의 침묵과 같은 윤리 규정을 위반한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만이 그로스에게 그녀가 들은 것을 말해도 좋다고 허용할 수 있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건 어떤 사람도 처하기 원치 않는 악몽 같은 상황”이라고 국무부의 통역배치 담당 책임자 스테파니 밴 라이제르스버그는 말했다. “기밀회담의 내용을 말하라는 측면에서도, 이 같은 회담의 통역을 할 때 기억력 관련 측면에서도, 이건 너무 힘든 상황이다”

그는 1대1의 긴장된 대담에서 오고간 모든 말을 정확히 기억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우리 일은 속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오바마와 푸틴의 회담에 동석했던 전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 마이클 맥폴은 그래서 주요 회담에는 공식 기록사의 배석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노트와 펜을 든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난 그 회담에서 공식적인 기록담당이었다. 이번 회담에선 기록사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일부 의원들은 이미 그로스의 메모노트에 대해서도 제출을 촉구한 상태다. “트럼프가 자신의 재정적 이득을 위해 (대통령이라는) 지위나 이번 푸틴과의 회담을 이용했는지 여부를 미국인들은 알 권리가 있다”라고 빌 파스크렐 연방 하원의원(민주·뉴저지)은 하원 감독 및 정부개혁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그로스의 의회증언을 요청하며 강조했다.

그러나 그로스의 청문회 증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원정보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19일 민주당 의원들의 그로스 소환에 대한 거부 표결을 했으며 국무부 관리들은 그녀의 소환 관련 가설 상황에 대한 언급조차 거부했다.

부시와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들의 외교관들도 그로스의 의회 청문회 강제 소환은 대통령 특권에 대한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러시아 관련 판단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문제에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통역의 역할을 정치화시키는 불행한 시도가 될 것이다”라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러시아대사는 말했다. 

통역관들은 비공개 모임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어떤 내용도 절대 기밀을 철칙으로 하는 윤리규정을 지적하며 그로스의 증언 촉구 논의 자체가 통역관들의 업무에 위협이 된다고 말한다.

파리에 있는 러시아 통역관 율리야 차플리나(45)는 미 의원들의 이런 요구가 국제 통역관들 사이에서 우려와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면서 “우리는 충실하게, 정확하게 통역하고 철저하게 기밀을 지킬 수 있어야 존재 가치가 있다. (이 같은 공개 요구는) 우리 직업의 기본 신뢰를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미 국무부에는 아랍어, 불어, 일본어, 한국어, 중국 만다린어, 러시아어 등 담당 12명의 통역관과 아랍어, 러시아어, 우크라이너어 등을 담당한 16명의 번역관들이 있다. 그밖에 불가리아와 폴랜드 언어 담당 3명의 전문가와 함께 필요할 때 보충할 수 있는 계약직 통역관들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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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트럼프와 푸틴의 헬싱키 밀실회담에 배석했던 유일한 미국인 마리나 그로스(오른쪽)가 회담 시작 전 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