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최대 양귀비 재배지 아피온서

식용 씨앗 넣은 젤리같은 로쿰 별미

온천·병원 연계 치료서비스도 유명

끝없이 펼쳐진 장미밭 이스파르타

새벽이슬 머금은 꽃잎 수확 체험

최고급 장미오일 향기에 흠뻑 취해



인 천공항에서 밤11시55분 비행기를 타고는 꼬박 11시간 밤을 날았다. 한동안 눈을 붙였다 떴건만 여전히 어두운 창밖으로 그믐이 돼가는 날렵한 달이 눈짓했다. 거짓말처럼 그 옆에 빛나는 샛별, 터키다. 그렇게 국기와 꼭 같은 신비로운 자연예찬을 첫인상으로 터키와 만났다. 서울보다 6시간 느린 이스탄불이라 새벽5시가 넘어 도착한 공항에서부터 알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터키, 그중에서도 그리스·로마 때부터 오스만제국 시대까지 1,600년간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매혹의 도시다. 그러나 미리 밝혀두건대 이번 여행의 테마는 꽃놀이다. 미안하게도 이스탄불은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매력을 어찌 매몰차게 뿌리치겠나. 이스탄불을 맛볼 수 있는 ‘꿀팁’ 하나 드리자면 국적기인 터키항공을 이용하는 환승객들은 이스탄불 시티투어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공항 내 샤워실에서 가볍게 아침 준비를 마치고 짐을 보관함에 넣고 나면 오전8시에 시작하는 이스탄불 투어에 함께하기 충분하다. 터키항공과 현지 문화관광부가 함께 운영하는 서비스라 준공무원급 현지 가이드와 버스가 제공되고 아침과 점심 식사가 포함돼 있다. 이미 밝혔듯 무료다. 비잔틴양식의 대형 돔과 모자이크 벽화로 유명한 이스탄불의 명소 ‘아야소피아’의 입장료 40리라까지도 ‘공짜’다.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아흐메트 모스크를 포함해 오벨리스크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근 지역을 돌아본 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서 생생한 터키의 삶도 느껴볼 수 있다. 단 6시간 이상 이스탄불에 머무르는 환승객만 누릴 수 있다.


◇유혹하는 양귀비=이제 본격적인 꽃구경 여행길에 나서자.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퀴타히아 공항에서 버스로 45분쯤 달려 아피온(Afyon)에 닿았다. 지명에서 ‘아편(阿片·opium)’을 떠올렸다면 감각이 꽤 좋은 편이다. 아편 원료가 되는 양귀비의 최대 재배국가가 바로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터키다. 터키 최대의 양귀비 재배지인 아피온에서는 기원전 2,200년께의 유물에서 양귀비 씨앗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양귀비꽃이 그려진 동전이 발굴되기도 했다. 보리밭과 밀밭 주변 어디서든 양귀비밭이 펼쳐진다. 세계 최대의 모르핀 공장이 아피온에 있다지만 식용 목적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드문드문 고혹적인 빨간 양귀비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흰 꽃잎이 청초한 순백의 양귀비다. 널찍한 꽃잎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한창 핀 양귀비꽃은 5월 말에 1차 수확하는 진액이 모르핀의 성분이 되고 7·8월에 영근 열매를 거둬들여 식용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터키는 말랑한 떡과 쫀득한 젤리의 중간쯤인 로쿰(Lokum)이 대표 먹거리로 유명한데 아피온 지방에서는 식용 양귀비 씨앗을 넣은 로쿰을 맛볼 수 있다. 

자연과 어우러져 마음이 정화됐다면 이제 온천에서 몸을 쉬게 할 차례다. 아피온은 양귀비뿐 아니라 온천으로도 ‘터키 최고’로 손꼽히는 곳이다. 클레오파트라가 터키에 와서 온천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주는 현지 가이드의 말은 허투루 들을 것이 아니다. 당나라 현종을 살살 녹인 양귀비 또한 온천 별궁을 수시로 드나들었지 않은가. 미네랄이 풍부하고 95도 이상 고온의 자연 온천수라 유럽에서 찾아오는 관광객 등 지난해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만 2만여명으로 파악됐다. 인구 8만명의 소도시에 5성급 호텔이 11곳이나 되는 이유가 바로 온천이다. 아피온 코가테페대(AKU)의 재활전문 물리치료 병원은 수(水) 치료로 유명해 인근 호텔과 연계해 픽업서비스를 제공하는 ‘치료관광 패키지’를 운영한다. 대형 호텔들도 스파에 의사나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치료사를 두고 휴식과 의료서비스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한다.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의 병원비는 터키 사람의 세 배가량이지만 아피온 지역 온천의 치료병원만 두배 수준으로 낮춰 ‘의료관광’의 경쟁력을 높여놓았다. 휴양과 요양을 겸한 온천 특화도시로 고령화시대의 새 먹거리를 잘 찾은 듯한 아피온이다. 


◇온몸 감싸는 장미=아피온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가량 달려 도착한 이스파르타(Isparta)는 장미축제(11~15일)가 한창이었다. 소방차 위에 올라선 소방관은 물 대신 장미꽃잎을 뿌렸다.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퍼레이드에 함께해 온 동네가 장미의 향과 흥으로 가득했다. ‘여기서부터 이스파르타’를 알리는 조형물도 장미, 가로등도 장미꽃 모양인 이 도시는 세계 최대의 장미오일 산지로 전 세계 장미 관련 제품 유통량의 60%를 생산한다. 지난 1999년부터 매년 열리는 5월 말의 장미축제가 올해는 날씨 때문에 개화시기가 앞당겨져 열흘가량 빨리 열렸다. 그래서 수확하는 손길도 더 분주하다. 장미꽃 수확체험을 위해 해 뜨기 전에 일찍 숙소를 나섰다. 개화 후 20일이 지나지 않은 분홍 장미 중에서도 새벽이슬 머금은 채 딴 촉촉한 꽃잎이라야 장미오일과 장미수 재료로 쓰일 수 있다. 우리네 쌀포대 같은 자루를 그득그득 채운 장미꽃잎은 즉시 공장으로 향한다. 4톤 장미잎에서 추출되는 최고급 장미오일은 겨우 1㎏에 불과하다. 이 장미오일이 프랑스 향수회사 등 세계 각지로 팔려나간다. 장미 밉다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만 터키 사람들은 유난히 장미를 좋아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40일간 매일 장미오일을 발라주며 예쁜 모양과 고운 향기를 간직하고 살기를 기원하는 풍습이 지금도 터키 시골에는 남아 있다고 한다. 오스만 시대의 황제들은 장미와 생강을 끓인 차를 즐겼고 이스파르타산(産) 로쿰은 장미꽃잎으로 만든 것이 별미다. 터키어로 장미와 웃음을 뜻하는 ‘귈(Gul)’은 여성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를 장미 물로 씻었다는 기록도 전하고 최근에는 장미 커피도 출시됐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스파르타의 장미밭은 2만8,000㏊에 달하고 매일 320톤씩의 장미잎을 내놓는다. 이 지역에 처음 장미를 들여온 ‘터키의 문익점’은 뮈프튀자데 귈주 이스마일 에펜디라는 긴 이름의 인물이다. 에펜디는 장미 강국 불가리아에서 반출금지령을 피해 지팡이에 장미종자를 넣어 1870년에 몰래 이스파르타로 들여왔다. 몇 해 전부터는 라벤더 재배도 늘어 7월에는 보랏빛 짙은 라벤더향을 음미할 수 있다. 향기로운 터키다.  

<글·사진(아피온·이스파르타)=조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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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최대의 양귀비 재배지인 아피온에서 순백의 꽃잎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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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으로 쓰기 위해 수확해 말린 양귀비꽃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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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로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