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스트레스에 공황발작까지 유발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감소와 연관
정신적 도움 주는 사이트 등장 상담도


아들이 태어난 후 아빠가 된 흥분도 잠시, 로브 샌들러는 두렵고 절망적이며 암울한 기분에 빠졌다. 그런 감정은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불러왔고, 8일 만에 할례 의식이 있던 날에는 공황 발작을 일으킬 만큼 심각해졌다.
의식이 끝나고 친구들이 작별인사를 하며 돌아갔을 때 그는 “다들 나를 이 빠져나올 길 없는 끔찍한 상황에 내버려두고 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댈러스의 마케팅 회사 간부인 샌들러는 덫에 갇힌 듯한 상태로 몇 달간 슬픔과 불안 속에 보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좋은 부모가 될 능력이 없다는 비통한 생각이었다. 


근년 들어 샌들러와 같은 아버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아기를 직접 낳지 않아도 산후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연구에 의하면 첫 아기를 보는 남성중에서 ‘베이비 블루스’를 겪는 사람이 7~10%나 된다. 이는 처음 어머니가 되는 여성의 12%에 거의 근접하는 수치다. 이렇게 우울증을 겪은 아빠는 아기가 자라는 동안 엉덩이를 때려줄 확률이 높고, 반면애 책을 읽어주는 일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발표된 USC 연구는 아버지의 우울증은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감소와 연관이 있음을 발견했다. 산후우울증은 여성들만의 증상이 아니라는 논쟁에 생리적인 무게를 더해준 것이다. 이 연구는 또한 처음 아빠 된 사람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아버지 자신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나 새로 엄마가 된 여성의 우울증 가능성은 올라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의 저자인 USC 심리학 교수 다비 색스비는 “남자도 산후우울증을 겪고, 처음 아빠가 된 사람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른다”고 말하고 “여성의 산후우울증도 일부 호르몬과 관련 있다는 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원인을 밝혀보려는 것이 이 연구의 의도다”라고 설명했다.
아기를 낳지 않은 부모들도 산후우울증을 겪는다는 사실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녀를 입양한 부모들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아기 출생 이후에 아버지들이 경험하는 것이 진짜 산후우울증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의 출산정신과 교수 닥터 사만타 멜처 브로디는 “아기를 출산할 때가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가장 힘든 시기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직접 아기를 분만한 여성이 겪는 호르몬의 극심한 변화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현상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우울증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성의 산후우울증에 관해 의학적 인정을 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사실 산후우울증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기원전 400년 히포크라테스였다. 그러나 그 이후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은 아기를 낳은 후 슬프고 불안하고 자살충동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내보이면 엄마 자격이 없는 문제 있는 여성으로 낙인이 찍힐까봐 속으로만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왔다. 
산후우울증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오랫동안 추정돼왔지만 의학적으로 그 증거가 밝혀진 것은 지난 5년 동안 여러 연구들에 의한 것이다. 또한 브룩 쉴즈, 귀네스 팰트로, 이방카 트럼프 등의 유명인들이 자신의 산후우울증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아직도 호르몬의 역할이 스트레스, 수면부족, 정신병력 등의 다른 요인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얼마나 큰지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심리학자이며 남성 정신건강에 관한 책(Dying to Be Men: Psychosocial, Environmental and Biobehavioral Directions in Promoting the Health of Men and Boys)의 저자인 윌 코트니는 “남자는 여자처럼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겪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면서 “처음 아빠가 되는 남성들이 겪는 호르몬 변화는 테스토스테론만이 아니라 여성 출산과 관련된 다른 호르몬 즉 에스트라디올과 프로락틴과도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닥터 코트니는 또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 여성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만 “남자들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우울하더라도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묵계가 있어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일이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다섯 쌍둥이의 아빠로 TLC 리얼리티 시리즈 ‘아웃도터드’(OutDaughtered)에 출연하는 아담 버즈비는 지난 7월 다섯쌍둥이를 낳고 나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공개해 엄청 비난 받았다.
닥터 코트니는 2007년 우울증에 걸린 아빠들이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호 웹사이트(Postpartummen.com)를 개설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이트는 도움을 청하는 남자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리소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산후우울증 여성을 위한 국제단체 PSI(Postpartum Support International)에서도 매달 첫 월요일에는 남성을 위한 무료 전화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남성들의 우울증을 산후우울증으로 보지 않는다. 출산의 시기에 찾아온 우울증일 뿐 호르몬의 변화가 있다 해도 큰 관계는 없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여성의 산후우울증조차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기보다 분만의 시기에 찾아온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지금 45세인 샌들러는 견해가 다르다. 당시 공황장애를 겪은 후 그는 정신과의사를 찾아갔고, 약을 처방받아 많이 나아졌다. 3개월 후부터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그는 불안 증세를 완화시켜주는 약 덕분에 감정의 기복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었고 아내도 적극적으로 도와줘 곧 아기를 키우는 기쁨에 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빠 노릇하는 건 정말 멋진 경험”이라고 자랑하는 그는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산후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자들이 겪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죠. 전혀 같은 종류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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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빠가 된 남성의 10명중 1명이 산후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i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