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나폴레옹은 왜 사람들의 상식과 감정을 거부한 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살육하였는가?”하고 자문하고는 스스로 말하기를 “그 이전의 모든 역사가 이미 이 같은 일들을 결정짓고 있었다”고 말했는데 톨스토이의 결론을 빌리자면 지도자란 역사라는 운명 속에 이미 결정된 ‘역사의 노예와 같은 존재’라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이런 ‘역사 결정론’적 인식에 반해 “역사는 어떤 특정한 개인에 의해 영위되어 왔다”는 ‘역사 가공론’적 인식이 있는데, 역사가 한 인간에 의해 좋게도 나쁘게도 변모되어 왔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가공할 만한 범죄로 인간성을 억압하고 짓밟은 지도자들에 의해 세상이 불행에 처해졌는가 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등 인간성의 앙양에 업적을 쌓은 지도자들에 의해 선한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톨스토이의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지도자에 대한 이 두 가지 상반된 주장과는 별도로, 어떤 지도자가 역사를 선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아니면 악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지도력에 대한 중요한 시금석 가운데 하나가 이들이 지도력을 행사함에 있어 강제에 의존하느냐, 설득에 의존하느냐, 명령에 의존하느냐, 동의에 의존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가 확연히 바뀌어 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지도력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시금석은 그 권력이 추구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인데, 탐욕과 특권의 보장, 또는 개인의 권력유지 및 확장에만 두었다면 그들의 지도력은 인간성 앙양이라는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멀 것이고, 가난한자와 약자를 위한 기회신장, 모든 사람에 대한 동등한 권리의 부여, 표현과 반대의 자유에 대한 옹호 등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그런 지도력은 인간의 복지와 자유실현의 증진을 도모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어떤 지도자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도자들 또한 신적인 존재라기 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인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나는 인간이 만든 법률보다 더 고귀한 법률에 따라 행동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양심의 소리였다”는 간디의 말처럼, 위대한 지도자란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 아닐까 싶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대통령선거가 코 앞에 다가온 느낌인데, 후보들 모두가 자신이 적임자라 주장하고 있다. 양심의 소리를 내는 지도자가 누구인지 꼼꼼히 살펴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미정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