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전통의식 가운데 자손들이 잘되고 못됨이 선조들의 선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독특한 의식이 있었는데, 윗대가 적선을 행하지 않았으면 그 집안에는 훌륭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의식은 자식 잘되기를 원하면 부모들이 세상에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벌문화(閥文化)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요즈음에는 족벌, 학벌, 문벌, 군벌, 파벌이니 해서 한국인의 벌문화(閥文化)가 다소 부정적 느낌을 주고 있지만, 원래 ‘대문 앞에 세워진 기둥’이란 뜻을 가진 벌(閥)이란 말은 세상의 유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왕이 대문 앞에 기둥을 세웠던 것이 그 기원으로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공부 잘하는 집안을 학벌명가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국계 미국인 가운데 글로벌 리더로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 고 경주 미국 보건부 차관보와 국무부 법률고문인 고홍주 형제, 얼마 전 작고한 강영우 전 백악관 장애인 위원회 차관보 등은 학벌명가 집안 출신들이라는 점과 봉사와 헌신적 삶에 가치를 둔 인성교육을 가정에서 교육받고 자랐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김용총재의 어머니 전옥숙씨는 미국에서 퇴계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아들에게 늘 ‘나 자신은 누구인가, 내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가르쳤다 한다. 이런 어머니 덕분에 그는 퇴계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위인들을 멘토로 삼고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고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경제전문가도 아닌 그가 세계은행 총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저개발 국가의 질병퇴치를 위한 그의 헌신적 삶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제주 고씨 출신인 고 경주 미국 보건부 차관보와 국무부 법률고문인 고홍주 형제 등 6명의 자녀 모두를 엘리트로 키워낸 전혜성 전 예일대 교수의 경우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공부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위해 공부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이 장남인 고경주 차관보의 말이다. 이같은 교육을 받은 이 집안의 6남매 모두 하버드나 예일대를 나왔고 대부분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중 4명은 현재 예일대 교수로 있으니 학벌명가중의 명가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시각장애인 박사로 유명한 강영우 전 차관보는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의 부모들은 실력(Competence), 인격(Character), 헌신(Commitment) 세가지 가운데 실력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주기 위해 공부할 때 자기의 성공도 찾아온다”고 말할 정도로 인격과 헌신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강조한 인물이다. 강박사의 장남 진석씨는 워싱턴 포스터가 선정한 최고의 안과의사로 꼽혔고 차남 진영씨는 백악관 최연소 입법담당 보좌관에 임명되었으니 이들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김용 신임 세계은행총재가 공식적인 임기를 시작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미주 한인사회의 자랑스런 인물이기도 한 이들의 인생 이야기를 읽도록 권하는 일도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적어 보았다. 조미정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