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1990년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조직폭력배 등 민생침해사범 단속에 총력을 기울일 때였지요.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내무부 법무부 등 5부 장관 합동 기자회견이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회견장 앞에는 5명의 관계 장관 외에 김기춘 당시 검찰총장이 함께 나와 오른쪽 끝 자리에 앉았죠. 장관이 아닌데 참석한 것이 다소 의아했지만 의외로 그날 돋보인 ‘브리핑의 주역’은 김기춘 총장이었습니다. 절제된 듯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그리고 조목조목 정부 방침을 설명하는 모습이 ‘장관을 능가하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휴일 날 아침, 김기춘 검찰총장으로부터 집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전화였죠. 한해 동안 취재 일선에서 수고한 데 대해 감사하고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사 법조 출입 기자 모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이런 덕담을 전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최초의 임기제 검찰총장으로서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는데, 그 이후 임기를 채운 검찰총장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런 일화들로 미뤄볼 때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완벽주의자로 평가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제 2차 청문회는 전날 열린 재벌총수 청문회 때보다 질의에 나선 위원들의 목소리 톤이 조금 강했습니다. 증인들의 무게가 전날보다 덜 부담스러워서 일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역시 모두의 최대 관심사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입이었죠. 대통령 경호실이 아무리 독립적으로 활동하더라도 비서실장이 모르는 청와대 상황이 있다면 실제로 매우 심각한 ‘업무 누수현상’이고, 국가안보 시스템 자체가 허술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지요. 더군다나 김 전 비서실장의 성격상 예전의 어느 비서실장보다도 모든 업무와 정보를 꼼꼼하게 챙기고, 완벽하게 보필하려 노력했을 것이 뻔한데 게이트 초반부터 일절 모르쇠로 일관하니 국민들이 뿔 날 것은 당연합니다. 청문회가 전부는 아니죠. 이번 청문회는 ‘모른다’가 키워드로 생각될 정도로 답답하네요. 최순실 청문회에 최순실이 없는 것부터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팩트가 없다는 지적까지 들립니다. 더 내실을 기해야 겠지요.  김수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