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게 찔러댈 것으로 예상했는데 방패에는 흠집 한 군데 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더 큽니다. 주말마다 인산인해를 이룬 촛불 덕에 그 어느 때보다 국회의 위세가 등등하고 저격에 나선 위원들에게 힘이 실린 상황인데도 전체적인 청문회 분위기는 진실 규명은커녕 면죄부만 준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총수 9명을 한꺼번에 증인으로 소환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치겠다는 어제의 국회 청문회는 당연히 한국은 물론 해외동포 그리고 외국언론들의 톱뉴스거리였습니다. 28년 전 5공비리 청문회가 역사에 회자되었던 것처럼 대통령 탄핵정국까지 몰고 온 국정농단 사태를 다룰 청문회인 만큼 창과 방패의 대결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귀가 확 트일 만큼 새로운 게 없었어요. 국조특위 위원들의 질문은 이미 검찰조사에서 또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이 태반인데다 너도나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몇몇 증인에게만 똑같은 질문공세를 퍼붓는 모양새여서 식상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누구라도 청문회 증인으로 나가야 된다면 질문에 대비해 방어준비를 하는 게 당연하고, 반면 질문에 나설 위원들은 증인의 방어벽을 뛰어넘을 새로운 질문과 증거를 야심 차게 준비했어야 마땅하지요.  또 이 청문회의 본질은 재벌 총수들이 최순실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후원한 돈의 대가성 여부를 밝혀내 박근혜 대통령을 더 옥죄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묵은 논란을 다시 끄집어내 반복 질문하는 등 누가 봐도 본질과 다른 엉뚱한 질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질의와 응답에 적절히 배분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질문 또는 질타하는 데만 사용해 정작 증인의 대답을 많이 유도하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5공비리 청문회에서 돋보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에 버금가는 ‘청문회 스타’가 나올 것인지도 관심사였는데, 마땅히 꼽을 만한 저격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위원들도 ‘제2의 스타 노무현’을 의식한 듯해 보였지만 그냥 코스프레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국민의식과 국가규모 등 모든 시대적 변수가 엄청나게 변했는데도 청문회 모습은 28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어 보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언론들은 이번 청문회를 보도하며 한국 재벌기업들의 정경유착이 심각하다는 투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지요. 재벌 비호가 아니라 국가이익 차원에서 국회는 이런 리스크 예방도 함께 고려해야 했습니다.  김수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