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의 삶”입니다. 그 사랑의 삶을 가장 잘 묘사한 성경말씀을 선택한다면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시대적 상황을 본다면, ‘문화의 충격(Culture Shock)’을 극복하며 복음의 진리를 전파해야 하는 ‘큰 믿음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 믿음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The Most Excellent Way)을 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장 좋은 길”이라 말씀합니다(고전12:31).

                  시대의 장벽을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을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아주 상세하게 말씀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21세기의 교회들에게 적용한다면, 고린도 교회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윤리나 도덕의 가치기준이 무너지므로 너무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교회는 가장 편리한 고도의 문명과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가장 높은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그것은 한 마디로 “상실과 과잉”의 벽입니다. “잃어버린 것(喪失)”의 충격은 삶의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건강의 상실로 인해 절망의 좌절을 맛보고, 명예의 상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맛보고, 믿음의 상실로 인해 관계의 앙금을 맛보고, 기쁨의 상실로 인해 우울의 고통을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 “과잉(과다 출혈)”의 충격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깊은 상처를 겪게 합니다. ‘지나치면 오히려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현대문명이 가져온 또 하나의 다른 모순적 형태입니다. 마치 사람이 피를 흘리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 과다출혈이 되면 사망할 수 밖에 없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지나친 소유는 그것이 부(富)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간에 욕심의 과잉은 그 파급효과가 실로 엄청난 것들입니다. 이 시대를 감당하려면 이 두 관계 즉, <상실과 과잉의 점이지대>를 잘 분별할 줄 아는 <가장 효과적인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상실의 벽>을 감당하고 <과잉의 벽>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가장 좋은 길, 가장 탁월한 방법은 <사랑>이라 하였는데, 그 사랑의 본질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7에서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모든 것은 인간의 희노애락과  생사화복을 동시에  내포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걷잡을 수 없는 위험과 위협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할지라도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쓰나미>를  “상실과 과잉”의 통찰력

으로 꿰뚫어본다면 그 해결책은 네 가지 스탭으로 가야합니다.  1. “모든 것을 참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막아내는 길은 그것을 보호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

다. 사랑은 곧 지혜입니다. 사랑은 곧 묘책입니다. 상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을 참는다는 진리의 핵심입니다.  2.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신뢰만이 모든 것이 절망으로 치닫을 때 헤쳐나올 수 있는 최고의 돌파구입니다.  그 결과 마침내  3.  “모든 것을 바라며(소망하며),  4. 모든 것을 견디는”  <최선책>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