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예언자, 에스겔이 겪었던 <두 가지 큰 상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의 상실, 약속의 땅의 상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일입니다. 에스겔은 희망의 예언자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해 왔습니다. 1만 명의 젊은이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 그 포로 중 한 명, 25세의 젊은이, <에스겔>이 있었습니다. 유다의 젊은 포로, 에스겔이 그발 강가, <데루빕>이라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얼마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했든지, 어느 날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분단국가 남쪽의 유다가 처한 상황은 절망적이었으나 선지자 에스겔이 본 환상은 대단히 대조적으로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 환상을 중심해서 기록한 내용이 에스겔서입니다. 

남쪽 유다의 비극적인 왕, <패주(敗主) 시드기야의 최후>는 예언대로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두 안구(眼球)가 뽑히고 그리고 그의 수족(手足)이 결박당하고 말에 매달린 채로 끌려 다니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바벨론 포로들 신세로 전락한 유다 백성들에게는 이제 조국이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약속의 땅을 상실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무렵 에스겔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도 도륙을 당했습니다. 성전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비극과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상실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은 치유자 에스겔은 새 소망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비롯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큰 위로를 주십니다.

이 참담한 상황에서 에스겔은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역사의 개입(intrusion of history)>을 통해서 위로를 주었을까요? 그것은 에스겔만이 체험한 꿈의 계시, 즉, <환상>입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전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성전에 물이 그득히 고이며 한번 걸어보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습니다. 그래서 <1천 척(尺)>을 걸어갔더니 발목까지 물이 찰랑찰랑 흘러 넘쳤습니다. 사방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또 1천 척(尺)의 물위를 다시 한번 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또 1천 척(尺)의 물을 체험하고, 다시 물은 점점 차올라 허리까지. 마침내 물은 성전에 가득하여 헤엄을 치지 않고서는 능히 건널 수 없는 수심 깊은 강물이 되었습니다. 

희망의 예언자, 에스겔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마침내 헤엄을 쳐야 할 순간에 도달하자 물은 성전을 한 바퀴 휘감아 돌더니 사막을 향하여 달려가고, 그리고 사해 바다에 도착하자 죽었던 사해 바다가 살아나 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뛰어 놀기까지 상황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막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데 보니까 주변사방에 온통 푸른 숲입니다.

진귀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분명히 암울하고 참담한 시대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꿈을 버리지 않으면 회복을 가져오게 되는 분명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에스겔이 체험한 성전 환상은 (1) 절망의 시대에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복의 은혜가 온다는 메시지요,  (2) 고난의 형극(荊棘)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새 소망이 찾아온다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이 모든 '회복과 치유'의 경건한 환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사 그들을 살리시려고 대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강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강물의 근원은 성전이 그 <시발점(Starting Point)>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교회)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흐르기 시작하는 보혈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물론 모든 만민이 살기를 원하십니다. 요7:37에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성전이요,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은혜의 충만한 강물이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본문은 대단히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 강이 되었다고 했는데 실상 예루살렘은 강이 없는 곳입니다. 더구나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그 물이 사막을 통과하고 사해 바다까지 이르러 마침내 죽은 사해 바다를 살렸다고 하니 상징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절-"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聖殿) 문(門)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절-"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며 나오더라." 구속사적인 측면(Redemptive history)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으로 성도들의 죄악을 담당하셨으며 친히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언급하셨다는 점에서(요 4:10;7:38) 이 '생명수의 강'은 그리스도의 보혈(Christ's blood)을 상징합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성전 문(the enterance of the temple)>이 가리키는 것은 성전 중앙에 위치한 성소의 문을 가리킵니다. 물이 시사하는 상징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에게 있어서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지구의 71 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생지는 모두 강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4대 문명 즉, 나일 강의 이집트 문명,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의 바벨론(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갠지스 강의 인도 문명, 황하 강의 중국 문명이 바로 그 역사적 실증입니다. 우리 사람의 몸도 70 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물과 성령으로 너희들이 거듭나야 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 

'성전 중심신앙(Temple-centered faith)'은 하나님께서 절망과 좌절의 절대위기 상황에 놓여있었던 남 유다나라와 그 백성들에게 허락하시는 영적 재충전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정체의 위기, 판단의 위기, 시대의 위기 상황을 걸어가는 이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그대와 나에게도 절실한 영적 전환점(Turning Point)입니다. 발목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무릎의 능력을 주실 것이며, 무릎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허리의 실천신앙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며, 허리 신앙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헤엄을 쳐서 은혜의 깊은 강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분은 여호와 삼마('거기 계시는 하나님')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망은 금물입니다. 좌절도, 낙심도 포기도 금물입니다. 지금이 바로 발목에 힘을 받아 신앙의 행진에 박차를 가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무릎에 겸손의 힘줄로 영혼의 눈을 활짝 떠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의 강, 감사의 강, 믿음의 강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가 헤엄을 쳐야 할 바로 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때가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은혜의 강에서 헤엄을 쳐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