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끝 무렵에 시작한 감기가 이제야 겨우 물러설 채비를 한다. 깊은 밤을 기해 기습하는 기침만 잠재우면 감기로 부터의 자유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지독했다. 약을 먹기 위해 식사는 해야하고, 밥 먹고 약 먹고 약에 취해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익숙하지 않은 초로의 여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투르고 생소하면서도 낯익은 듯한 얼굴이다. 초췌하고 치진 모습이다. 후줄근하고 피핍해 보이는 저 할망구는 도대체 누구일까. 촛점이 잡히지 않고 희미하니 멀게, 요연하게 느껴진다. 까마득한 이 낯섦을 어떻게하면 좋을지 몰라 막막하기만 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아득하다. 막연히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정신이 흐려진 상태라고 간주하기에는 그동안 지녀온 긍지가 허락치 않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창조주로 부터, 가족으로 부터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는데. 순각이지만 전류같은 교호가 엇갈리며 기운이 빠지고 몽롱한 느낌마저 든다. 빛과 시신경의 교차에 걸려든걸까. 저항할 수 없는 혼란에 사로잡려 멍하니 거울과 마주하고 있다. 

그 할망구가 꿈인듯 생시인듯 거울 속에 억지로 달라붙어있는 형국으로 볼 수 밖에 업다. 염치없음과 좌절감으로 얽힌 표정이라 어디에서 만나질까 창피스럽기까지 하다. 최대한의 밝은 표정으로 실죽 웃어본다. 웃는 모습은 봐줄 만 하다. 어이없다. 잔뜩 화난 모습으로 썩 물러가란 듯이 표독한 눈빛으로 사정없이 쏘아붙인다. 거울 속 할망구는 묵언으로 일관할 뿐이다. 마치 맞서서 모순을 상쇄하려는 관계로 실려가는 모양새다. 대치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알력을 가지고 대항하거나 양립할 가치조차도 없는 상대를 단념할 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음이다. 사고력이 퇴화해버린 것 같은 좀스럽고 용열한 상념들을 털어버리고 싶다. 더 이상 전유하고 있는 감각이랑 정감에 흠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긴장된 절박감으로 얼굴을 매만져보기도 하고 온 몸을 마구 흔들어본다. 

거울 속 할망구와 소통을 나누었어야 했을까. 아니지. 지금 감기증세 외엔 몸과 마음의 정황은 무난한 편인데. 긴 시간 복용한 감기약의 조화라며 예사롭지않은 순간들을 털어버리려 찬물에 얼굴을 한참 동안 담구어본다. 어쩌면 먼 훗날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자괴감이 운무처럼 피어오른다. 찬 물로 얼굴을 헹구어내고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거울 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할망구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무엇이 삶의 소통이며, 진정한 결핍인지 자아 부재의 판단이 헤아려지기 시작한다. 거울 속의 노파는 분명 메세지를 갖고 있을 법해 보였는데. 함께 공생해온 또 하나의 자아일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명예로 지칭받는 것 같아 마음의 감기를 육신의 감기와 분별없이 다시 앓게될 것 같다. 공과 사의 개별적 요소나 인성이 지닌 특유의 개성을 서로 침해 당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구분 지어가며 평안한 관계를 안전하게 유도해 낼수 있기를 밤을 새우며 정황분석을 해내느라 구토가 날 정도로 시달렸던 시간이 무상한 상실로 감기를 덧나게 만들 것 같다. 언어적 태도로 할망구의 내면세계를 읽을 수도 없음이요, 지나친 섣부른 규정 또한 위험한 것이라서 거울에 떠오른 허상과 자연스레 생성되는 정(情)의 형성력의 구체성 조차 현실과 동떨어진 강조가 되기 십상이라서 진리를 올곧게 따르려는 고유한 인격의 가치성을 스스로의 실체로 인정해야겠다고 작정하기에 이르렀다.  

거울 속의 자아란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상상에 의해 얻어진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 얼굴이 나처럼 예쁘지 않은 여자는 어릴적 부터 예쁘다는 말대신 귀엽게 생겼네라든지 착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도 자로온 터라 사람을 통해 자신이 미모가 출중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미 알고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마침내 예쁘지 않다는 사실에 걸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 여학교 시절엔 꽤나 개구장이였고 남궁동자처럼 행동했던 것도 결국 자신의 특성보다는 주변 환경의 영향력이 크다는 반증을 얻은 셈이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 모습, 혹은 나에게서 기대되는 기대치를 흡수하며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라서 거울 속의 자아는 완전한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단정짓는다. 거울 속으로 찾아온 할망구와 마주 손가락질을 하며 ‘누구세요’ 인사를 나눈다. 이제사 느긋한 미소를 주고 받는다. 우리는 평생 자신의 얼굴을 직접 바라볼 수 없음을 간과하고 살아가고 있다. 거울이 아니면 실체의 우리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이어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