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드디어 밝아왔습니다. 역사의 저편에서 비롯하여 흔히 사용하며 인사를 나눈 새해인사말 가운데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날이 밝아옴으로써 새해라는 말이 생겼는데, 식자층의 고상한 인사말로 생각해낸 것이 "삼가 축하드린다"는 근하(謹賀)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의 기원의 뜻을 가진 "신년(新年)"의 합성어로서 생겨난 '근하신년'의 새해인사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을 비롯한 서양인들은 새해 첫인사가 "Happy New Year!" 즉, "새해에 늘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기분 좋은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인사법에서 벌써 동양과 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막연하게 새해를 축하하는‘추상적인 인사말’보다는 "오히려 행복한 새해가 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벌써 행복해져 옴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A.D. 62년경, 사도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 갇혔을 때, 그는 영어(囹圄)의 몸으로써 로마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 자유가 없을 때, 오히려 저 감옥 밖의 자유인들에게 뜻 깊은 인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가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 흔한 인사법보다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던 것입니다. 

엡1:5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아무리 말로써 위로를 건네고 격려를 해준다 할지라도 하늘에서 우주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그 신분을 바꿔주시는 이 축복의 인사와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요? 바울시대에 로마에서는 노예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노예가 주인의 은총을 받아 주인의 가족으로 입양되면, 그 노예는 종의 신분을 벗어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본래 죄와 죽음의 노예였던 우리들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위적인 관계로 인해 맺어지는 패밀리의 개념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귀한 축복을 사도 바울은 인사의 말로 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딸이 되면, 어떤 특권이 주어지는가?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2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Our Father in Heaven)'로 모시게 되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오늘 잠깐 행복하다가 그 행복의 순간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주어지는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귀한 축복의 인사를 로마 감옥의 차디찬 환경 속에서 전하여준 이 귀한 인사말, 그것은 오늘도 '새날(New Day)'이요, 내일도 '새날(New Day)'이요, 영원히 '새날(New Day)'이 되는 귀한 축복의 개런티를 받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새해를 축하합시다. 진심으로 새날을 축하합시다. 영원히 주어지는 새날의 축하를 합시다. 그 인사말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자녀)이 되시는 귀한 축복으로 새해를 맞으십시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에베소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명은 고도로 발달하나 마음의 상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공허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이 인사야 말로 <최고의 근하신년의 인사>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새해, 새날의 인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