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들이며 지난해의 마무리 끝에 아쉬움으로 남겨진 부분이 융기처럼 도드라지게 남아있음을 보게되었다. 온전한 비움이란 생각처럼 바램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애착과 미련이란 불필요한 감성에서 밀려나는 기분마저 든다. 사물이나 때로는 가구나 공간을 할애하고 있는 크고 작은 가전제품들, 부엌용품들까지 포함시켜가며 나눔과 버림, 수납의 개선으로 정돈을 한터인데도 시야에 걸리는 것들이 남아있다. 최소한의 것 만 남긴다는 것, 실은 그 경계 조차도 모호한 것인데도 말이다. 생활의 둘러리일 뿐이라며 미니멈의 필요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 이상 줄일 것이 없는 상태를 도모하며 단순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몹씨도 일상을 다그쳤던 것 같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생활패턴의 간소화로 단출하고 홀가분해지기를 열망해 왔지만 온전한 비움의 거울 앞에 미완성의 얼룩이 남겨져 있음을 본다.  비움에 집중하게 되면서 진정한 비움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자문하며 생각하게 되었고 적게 갖는다는 개념을 넘어 일상에 중요한 것들의 우선 순위를 정립해가며 그 가치의 정체를 규명하게되는 이득도 얻게 되었다. 일관된 고유의 자존적 가치가 바르게 정립되어 가기를 염원해본다. 이로인해 주위와 비교하는 습관은 확연히 줄어듦과 동시에 최소한의 것으로 여유로움을 누리다보면 덤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즐비하더라는 것이다. 청소범위가 한결 줄어들었다든가, 비교문화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든가하는 표면적 사유보다 생의 밑그림이 정비되고 가치관이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 정녕 필요한 것인가를 묻고 또 물어본 연후에 내 울타리 안으로 반입하게 된다. 무엇 하나 쉽게 접근하도록 열어두지 않는다. 가장 알맞은 만큼의 소유를 고집하며 소유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의 선을 매일 긋고 있다. 어느 누구의 삶이라해도 소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삶이란 도무지 잠깐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은 먹구름이 끼어들기 마련이라서 최소한의 후회를 위해 최대한의 비움을 적용하는 삶으로 내달아야 한다고 본다.  발 디딜 틈 없는 채움의 공간에 살면서도 더 갖기 위해, 더 좋아 보이는 삶으로 치장하기 위해 생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대개의 인생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채워져야 행복하다고 믿고있다. 하지만 행복은 채워진 곳에 머물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금물을 마시는 것 같이 가져도 가져도 만족은 더 멀리서 손짓하고 부족하다는 상념만이 삶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 얽히고 있음을 눈채채지 못한체 만족을 향한 집념은 나비효과를 불러들이고 종국에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인생이라서 시간 앞에서 무기력한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느지막하게 깨닫게된다 하더래도 소홀헸던 시간과 삶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리거나 역부족으로 회한이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어김없고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한사코 다가오기 마련이다. 소멸과 생성이 서로를 위해 시간을 예비하며 기다려주리라 믿어왔었지만 서로의 등을 바라보려 버둥대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볼 수 밖에. 마지막을 또 다른 시작이라며 영원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것을 되새기도록 새해라는 마디가 리듬을 타고 우리를 찾아와 주었다. 감사해야할 일이라서 그윽하고 깊게, 맑고 순전하게 비움으로 채워가는 새해로 만들어가려 한다.  지난해 새해 아침에도 비움으로 채워가는 새해를 만들자고 설정해 두었는데도 그 목표를 다시금 이월하기로 했다. 비움을 지켜내기 위해 새해에도 다시금 비움으로 채워가는 새해로, 내 삶의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한 표어로 삼기로 했다. 또한 한 해라는 분량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것이라서 시간이란 소재를 스스로 한정짓거나 무한하다는 개념 탓에 낭비하는 누를 범치않으려 한다. 한 해 위에 놓여질 사념들을 조심스레 가려내며, 신비롭게 풀어내며 삶의 등불로 삼아가리라. 비움으로 채워가는 새해이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