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길에 오르면서 마련했던 안경이었는데. 서점에 들러 안경을 찾을 요량으로 가방 속을 더듬어 보았지만 안경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 가방을 뒤져보아도 안경이 없다. 집을 나설 때 분명 가방에 넣고 나왔는데. 눈을 찌푸리고 책을 뒤적이고 있자니 영 불편해 혹시나 차에 흘린 건 아닐까 다시 차속을 훑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서점 일은 다음으로 미루고 집으로 돌아와 확인 해보았지만  없다. 이십 육년 손때 묻은 정든 안경인데 서운해서 눈물이 핑 돈다. 모양새의 변천은 쉬지 않고 흐르고 흘렀지만 너무 가볍고 편안해서 쉽게 바꾸어지지 않았었는데. 이렇듯 정든 안경을 지켜주며, 글을 읽을 때 약해진 시력을 도와주며, 서로를 의지하듯 변하지 않고 지내 왔는데 어디서 흘려버린 것일까. 물건도 주인을 닮듯 유행의 흐름도 아랑곳 않고 한번 정한 주인과 안경의 관계를 지켜왔다. 잦아지는 건망증 탓에 몇번 흘린 적도 있었지만 끈질기게도 다시 내 손에 들어왔었는데.

눈을 도와 줄 안경은 다시 마련 할 수도 있겠지만 잃어버린 안경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며 얼마나 외로울까. 마치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의 망연함을 다시 겪는 것 같다.

정이 든다는 것이 애착으로 귀결 될수밖에 없음이 면구스럽다.  다른 안경을 마련 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 정의 의미가 이토록 마음을 아리게 할 줄 몰랐다. 나만 유독 유난한 것일까. 당분간은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안경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이렇게 하찮은 물건에 정을 들이는지. 정든 안경을 다시 만질 수 없다는 것에 마음도 서성이고 일손도 잡히지 않는다.  왜 유난히 손때 묻은 물건들에 애착을 갖는지 아예 정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도 타고난 성정을 어찌 할수 없어 체념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 끝에 안개 같은 외로움이 저며온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러하다. 정과 정의 끈끈한 맺음과 흐름으로 그 관계는 행복해 질 수도 있고 상처가 되는 관계로 갈 수도 있는 것이라서 사람에게든 물건에게든 쉽게 정을 들이지 말아야 겠다는 철부지같은 다짐을 하기에 이른다. 이미 정든 사람과의 정만이라도 곱게 가꾸며 어느 물건에라도 이젠 쉽게 정을 심지 말자고 마음을 돌린다. 정이란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사용되어온 말이다. 정이란 낱말에 상응되는 낱말이 있는 나라가 동양에 한 두나라가 있을 뿐 사랑이라는 낱말로도 대체 될 수도 없는것은 정에서 우러나는 우리네들 만의 향토 문화가 있기 때문이리라. 고유의 정서에서 빚어진 것이라서 우리 민족에게만  유난히 어우러지는  말이라 여겨진다. 선조들의 훈훈한 삶의 향취가 배어 있어 어느 민족도 흉내낼 수 없는 다사로움과 끈적끈적한 엉김과 눈물까지도 적셔져 있다. 이토록 곱고 아린 정이란 말의 아로새김 앞에 작은 물건 하나에 정이란 말을 실어버린 누를  범한 것 같다.

문득 바늘을 잃어버린 애석함을 그린 조침문이란 글이 떠오른다. 작은 물건의 잃어버림

속에 묻어나는 상실감이 떄로는 숨겨진 관계의 아름다움과 맺어진 진실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를 얻어내기도 하지만 잃어버림의 안타까움을 자꾸만 되새기게 된다.

제 자리에 있어주지만 기능을 잃어버린다면 존재의 상실감은 더할것이란 생각도 그렇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혼자만의 선호에 집착일 수도 있겠기에 부끄러운 집착이라는 생각앞에 한 줄기 서늘한 바람 줄기가 지나간다.  내 것이라는 소유의 울타리를 두르고 살아온 어설픈 한 여인을 본다. 씁쓸한 시행착오를 범한 아둔함 앞에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고 혹독한 깨우침이 가슴에 와 박힌다. 애틋하게 아끼고 가꾸어야 할 것에는 후회없이 정으로 다듬으며 이어가야 하리라.  그리고 잃은 것 때문에 가슴의 온기를 잃어버리는 두번의 잃어 버림은 하지말자. 정든 물건을 잃은 허전함이 가슴 바닥으로 침잠해 간다. 잃어 버린 안경을 아쉬워 하는 마음에 매듭이 지워질 날이 올 것이란 기대감에 마음을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