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nta 에 머문 가을이 절정이다 싶다. 단풍이 하도고와 가까운 공원을 찾아 낙엽을 밟아 보자는 심산으로 집을 나섰다. 차 속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남편에게 정색을 하며 부탁을 했다. 사고나 위급한 상황을 만나  미쳐 부탁 할 말을 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게 되는 예기치 못할 유고시엔 남은 시간을 동행 할 친구를 찾아 노년을 외롭게 보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흘려 듣지 말고 마음에 새겨 두라는 유언 같은 말을 전했다.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 여자는 동행을 먼저 떠나 보내도 그렇게 초라하게 보이진 않지만 남자분 혼자 지내는것이 외로워 보여왔던 터라 서로 외로움을 덜어 줄 친구를 만나 노년을 새롭게 설계해보시라고 권면을 했다. ‘ 쓸데없는 소리 ’ 하면서 남편은 얼굴을 돌린다. 한 동안 창밖을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얘기를 서로 꺼내지 못한채 남편은 운전대만 줄곧 붙들고 앞만 보며 달린다. 가을이기에 나눌수있는 얘기였던것 같다.

도심을 벗어나 한가한 교외로 들어섰다. 숲이 우거진 길을 끼고 공원 표시가 보인다. 다행히

애틀랜타에는 주거지역 가까운 근교에 숲을 품은 Park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여분의 시간을 기대하지 않더래도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숲이 가까이에서 만나지는 것도 이 땅에서의 누림이 아닐까. 집 근처 공원에도 신책로가 있지만 생각보다 자주 찾아지질 않았었다. 공원 벤치에 앉았다. 가벼운 간식거리를 나누며 언제고 꼭 해두고 싶은 얘기 였노라고 유서 처럼 써서 두기도 애매한 이야기가 아니냐며 오랫동안 마음에 준비해 두었던 얘기였었다는 변명을 늘어 놓는다. 눈만 껌벅이고 아무런 대꾸가 없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차례도 모르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라며 한층 높아진 먼 가을 하늘가로 눈길을 준다.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가까이에 늘 있었기에 수시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이웃해 있는 공원처럼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 온 것 같다. 유년의 들판에서 돌리던 바람개비처럼 세월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 버린 것 같다. 함께했던 반세기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그렇게 심한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었노라고 말하곤 했었다. 싸움꾼 처럼 싸우진 않았던것 같다.  그것만은 겨우 내세울 수 있음을 자부하며 살아왔다. 남편이 화를 내고 흥분할 때 무조건 미안하고 내 탓이라고 사과하는 순간들은 흑과 백의 치열한 싸움으로 내 속은 전쟁터가 되고 평온을 가장한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도 있었지만 순간 순간을 잘 넘겨온것 같다.

싸움은 큰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둘이서 주고 받으며 큰 소리를 낸적이 거의 없었다. 남편이  화를 내고 큰 소리로 번져갈 때도 있지만  화를 삭일 때 까지 침묵으로 일관한다.  때론 그 이튿날이 되기도 하고 어느때는 한달여 시간으로 길어질 때도 있었지만 남편은 화를 낸 것을 후회하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예전같은 일상을 돌아 간다.  늘 이렇게 결말이 난다. 나이 들면 다투는 것 조차도 귀찮아 진다는 말이 이제 내게도 슬그머니 다가와 있다. 주고 받고 옳고 그름을 밝히고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절차들이 모두 귀찮아 진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힘든 절차를 밟지 않으며 평온하게 넘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곁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자고 다짐하고 있는 터이기에.

마음이 타박상을 입은 날엔 막상 일기를 쓰려고 앉으면 어제 일이 오늘 같고 그날이 그날 같은 착각으로  일상들이 하얗게 지워진 것 같아 일과를 뒤적이게 되지만  맑은 마음으로 책상과 마주할 수 있는 날엔 일상으로 주어진 몫의 삶이 하루를 축소한 듯한 풍경으로 떠오른다. 그날에 만났던 풍경들이 그 속에 담겨 있는 사념과 대화들과 흐르는 물소리까지 또렷한 기억으로 떠올라 주어 감격할 때도 있다. 기약 할 수 없는 그 날 까지 산 그림자에 어둠이 잦아 들 그 시간까지 나란히 수저를 놓고 밥하고 찌개를 끓이며 달력은 한장 한장 넘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