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들고 앉아 책 속에 빠져 있거나 글을 쓰다가도 멍 한 채 시야의 초점이 흐려질 때가 있다. 꿈을 꾸 듯 시공을 초월한 궁창으로 들어서거나 안개 같은 공간으로 날아가고있다. 번번히 홀로의 시간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멍해지는 시간들은 생각들의 유희가 난무 할 만큼의 흔들림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그림자들을 몰아내고 홀로의 시간으로  접어드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현상이다. 분요함으로 부터의 자유가 허락된다. 계획이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의 여유로움이 나를  유혹한다. 마음 껏 몰입하는대로 길을 비켜준다. 여유와 쉼이 끼어들도록 풀어놓을 수도 있지만 이 일을 위해 마음을 뺏길만큼 긴장감 같은것은 없어도 된다.

본질적인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한 모습으로 앉아있기 일쑤다. 비가 내리는 날은 빗줄기를 바라보다 일상속에서 하던 일에의 몰입을 거부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하지만 아무 예고도 없이 엄습하는 멍해지는 순간들을 여전히 즐기고 있다. 멍해지는 공간 속으로  빠지는 것은 주의력이 산만해서도 아니다. 그러나 이 공간 속에 갇히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주위에 깊은 고요가 스며들면 나의 멍한 상태도 깊이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멍한 순간에 잠겼다 헤어나오면 마음의 뜨락에 매듭진 상처들이 풀려나기도 한다. 일상중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거운 추를 매단 듯한 관계의 흐름들로 막혔던 물꼬를 틔워주기도 한다. 때론 반짝하는 아이디어의 생성을 맛보게 해주기도 하고 숨어 있는 언어를 찾아 내기도 한다.

멍한 상태가 지속 될 수 있는 것은 부교감 신경에서 교감 신경으로의 재빠른 전환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사색을 하거나 사념에 잡히는 것과는 분명 별개의 공간이다. 꿈을 꾸는 것과도 구분 지을 수 있는 엄연한 자의식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무더위 끝에 내린 소나기를 만나듯 생각의 타래들을 편안함으로 이끌어주어  삶이 매어놓은 사슬을 풀 수 있는 돌파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없어도 무관한 버려도 되는 짬은 결코 아니다. 일상에 흘러드는 크고 작은 일들 사이에 끼어드는 유익을 끼치는 시간들이다. 마음상태가 기민하지 못하거나 아둔해서 어기적거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도 아니다. 서둘러서 해치워 버릴 일도 아니다. 멍 해지는 순간들이 어느덧 일상중에 비옥한 시간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일상의 시간들 속에 숨겨 둔 보물창고 같은 공간으로.

세밀하게 잘려진 작은 시간의 조각들을 나만의 누림으로 사용하는 은밀한 기쁨을 숨기고 싶지 않음은 산재된 일상의 일 속에서 자글거리는 오밀조밀한 작은 쉼을 권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늘이 개인 맑은 날엔 창 밖 허공에 시선을 걸어 두고 멍해지는공간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기도 한다. 분진을 품은 소음쯤은 그 시간 속에 들어앉은 나를 꺼내지 못한다. 분주한 시간의 틈새 사이로 전개되는 푸른 초원이다. 일상에서 살짝 훔쳐버린 시간 속에서 충만한 회복의 기쁨을 만끽하고 세상살이에 끼인 이끼도 마알갛게 지울 수도 있다. 어머니 내음 같은 어루만짐을 얻기도 한다. 아지랑이 같은 위로가 포근히 감싸 안아줌도 맛보는 특별한 은혜로움이다.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판타지의 세계로 접어들기엔 일상이 허락하는 녹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의 계산법이 누비고 다니는 일상에서 섬처럼 떨어져 나와 나만의 시간 속으로 안개 같은 시간을 탐하는 것이 혹여 누를 범하고 있는건 아닐까 가끔은 눈치가 보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가족들로부터 조화로운 멍한 시간을 갖도록 요구 받아왔던 것을 오래도록 못들은 척했음을 시인하며 멍한 시간의 절제를 받아 들이기로 한 날이다. 멍한 시간이 주는 감미로움의 아쉬움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