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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병풍 두른 靈山〈영산〉… 민족의 정기를 품다

지역뉴스 | 라이프·푸드 | 2018-11-16 10:10:19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남북 정상이 지난 9월 천지(天池)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두 손을 맞잡은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생수병에 천지 물을 담는 소소한 일화 하나하나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명장면이었다. ‘민족의 영산(靈山)’에서 정기를 듬뿍 받은 두 지도자를 보면서 남과 북에 흩어진 동포들은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로 뭉치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국제사회와 남북의 제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맞물려 한반도 정세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 그때의 감동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백두산을 찾았다. 산을 오르내리는 내내 통일을 향한 기대와 분단의 안타까움이 교차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백두산 관광 코스는 총 네 곳인데 북한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동파 코스는 우리 국민들이 이용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후 중국을 통해 들어가는 북파·서파·남파 코스로 백두산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이 세 가지 경로 가운데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간 뒤 계단을 걸어 천지까지 올라가는 서파 코스를 선택했다. 중국 지린성 옌지의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이도백하)에 위치한 서파로 입구에서 표를 끊은 후 셔틀버스를 타고 45분 정도 이동하니 천지로 향하는 계단 앞에 승객들을 내려줬다. 아직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백두산은 장대한 위엄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준령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었고 산 전체를 하얗게 뒤덮은 눈밭은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다. 초장부터 들뜬 흥분을 겨우 가라앉히고 계단을 타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른 오전이었음에도 산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은 미리 추위를 대비해 두툼한 겉옷을 챙겨입은 모습이었지만 예상외로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환한 햇살 아래 영상을 유지한 기온 덕분에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일행을 안내한 현지 가이드는 “10월 말에 이 정도면 정말 축복받은 날씨”라며 “기쁜 마음으로 산을 타면서 경치를 감상해라”고 기운을 북돋웠다.

계단 입구에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휴게소에 잠시 앉아 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인 뒤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잠깐의 휴식으로 금세 체력이 회복됐는지 한시라도 빨리 천지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서 성큼성큼 걸음이 내디뎌졌다. 그렇게 총 900m의 트레킹 코스를 걸으며 1,442개의 계단을 타고 오르자 TV 브라운관 너머로만 흘깃흘깃 봐왔던 천지가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냈다.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빛의 호수와 병풍처럼 천지를 휘감은 봉우리들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넓이 9.18㎦, 평균 수심 213m의 천지를 둘러싼 날씨는 하루 동안에도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한국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들 사이에서는 “100번 산을 올라도 천지를 두 번 보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름이 백두산”이라는 농담이 퍼졌다고 한다. 한참을 넋 놓고 천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사람 키 높이 정도 되는 경계비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가르는 이 비석의 앞면에는 ‘中國’(중국)이라는 한자가, 뒷면에는 ‘조선’이라는 한글이 붉은 글씨로 선명히 찍혀 있었다. 경계비를 빙글빙글 맴돌며 장난스럽게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다 보니 남북을 가르는 분단의 안타까움이 새삼 아프게 다가왔다. 

하산길이라 몸은 가벼운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내려오니 서파 코스 이용객을 기다리는 셔틀버스가 보였다. 서파 코스는 하산한 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금강대협곡을 구경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루는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이 자랑하는 또 다른 절경(絶景) 중 하나다. 멋스럽고 아름답지만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험난하게 펼쳐진 협곡을 보면서 조금 전 천지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서 마주쳤던 안내판이 다시 뇌리를 스쳤다. 그 안내판에는 ‘백두산을 오르면 일생이 평안하다’는 문구가 한자와 영어로 적혀 있었다. 갈라선 세월이 워낙 오래됐으니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돌아가는 길도 저 협곡만큼이나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단의 세월이 벌려놓은 틈을 좁히고 이해의 폭은 넓힌다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그날도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안내판에 적힌 명쾌한 문구대로 민족의 앞날에 오직 평안만이 깃들기를 소망하면서 협곡의 산책로를 빠져나왔다.          

   <글·사진=나윤석 기자>

순백의 병풍 두른 靈山<영산>… 민족의 정기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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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를 찾은 방문객들이 눈부신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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