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Ⅰ한국 38 년 (20)
생사의 고비
사지로 떠난 아버지 형제는 다음날 저녘 큰아버지의 시신을 가매장 해 놓고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부엌 옆에 비밀 방공호도 만들었다. 넓고 큰 방공호는 안전한 생활 공간이 됐고 먹을 양식도 충분 했으며 중공군들은 간혹 밤에만 오갈 뿐 낮에는 볼수 조차 없다. 예상 했던 것과는 달리 죽창으로 사람들을 찔러 죽이지도 않았고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그동안 국군이나 인민군들이 자행한 행포와 살상 행위와는 천양지차다.
하지만 중공군들이 어떻게 변할지 지난 가을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자행한 끔직한 살상 행위와 만행을 그들이 다시 재연 하게 될 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중공군 치하의 불안전한 암흑의 긴 터널 속에서 UN군이 올 날만 기다리며 미군기가 폭격을 하면 숨어서 박수를 쳤다. 잿더미로 변한 페허 위에도 맑고 높은 하늘에 구름들이 평화롭게 떠도는 것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순간 별안간 비행기 두 대가 나타나 몇바퀴 돌더니 아랫 마을에 기관총 사격을 가 했다. 비행기는 내가 있는쪽을 향해 계속 사격을 하는데 너무나 무서웠고 내 뒤에 방공호가 있는데도 피할 수가 없다. 다행히 틈이 생기는 순간 비호같이 방공호로 피했다. 비행기는 기관총 사격과 폭탄을 계속 투하 한 다음 사라졌다. 조용해 진후 방공호 밖으로 나와 내가 있던 자리를 보니 총탄 자국이 수 없이 많이 나 있다. 만약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만신창이가 된 채 참혹한 저 세상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 폭격으로 아랫 마을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안타깝게도 그 가족은 6.25 당시 부산까지 피난을 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 이번에는 피난을 가다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 해 되돌아와 방공호 속에서 살다가 비참하게 희생 됐다. 불행 하게도 중공군들이 방공호로 뛰어 들어 온 것을 본 비행기가 폭탄까지 투하 해 일가족이 다 참혹한 화를 당하게 된 것이다. 전쟁의 비참함과 생사는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모두 다 파리 목숨들이다.
겨울이 가고 봄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깊은 밤 중공군들이 임진강을 건너 북으로 향했고 며칠 간 밤새도록 계속 북으로 간후 조용해진 그 다음날 비행기 소리가 요란 해 나가 보니 산너머 남쪽 하늘에 오색 찬란한 낙하산들이 함박눈이 내리듯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뒤이어 영국군과 필리핀군들이 마을로 들어 왔고 우리는 뛰쳐 나가 그들을 환영했다. 말도 안 통하는 환영이었는데 필리핀군 하나가 내 앞으로 와 서툰 한국말로 인민군이냐고 물었는데 나는 인민 즉 민간인이냐고 물어 본 줄로 착각하고 그렇다고 대답해 필리핀군이 총을 내 가슴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해 옆에 있던 외사촌 누님이 내 앞을 가로막고 손짓 발짓으로 동생이라고 변호를 해 기적같이 죽음을 면했다.
필리핀군이 총을 거두고 다른 곳으로 가고 난 후 나는 혼이 빠진 것처럼 넋을 잃었다. 전시엔 아군이나 UN군이나 중공군, 인민군, 모두 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그렇게 간단히 죽이고 죽는 것이 전쟁이다. 언어 불통으로 인해 죽기 직전 누님 덕에 기적같이 살아난 나는 지금 운좋게 미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영국군과 필리핀군은 임진강까지 진격했고 영국군 탱크 부대는 임진강을 건너 북진을 했다가 해질 무렵 되돌아와 산너머 설마리 비룡계곡으로 향했다.